대한민국 국적
포워드 포지션을 가진 농구선수로
10-11 시즌
KBL 리그 MVP를 받은 바 있으며
대학 시절,
한 때 농구를 그만두며
육군 현역 만기 전역을 하는 등
독특한 행보를 보였다가
다시 농구계로 복귀하는 등
파란만장한 커리어를 가진 선수로 알려졌다.
화려하진 않지만
묵직하고 기본기를 비롯한
한방을 가진 선수로
은퇴 후에는
현재 고양 오리온스 전력분석원으로
제 2의 인생을 사는 중.
KBL에 오기 전까지
고교 시절,
눈에 띄는 유망주로 평가 받았지만
중앙대로 진학하면서
송영진, 김주성 등 이미 넘사벽의 자원들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박상오의 자리는 없었다.
박상오는
스스로 한계를 느끼며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농구를 그만두고
이 때에 군대에 가게 되는데
현역으로 갔으며
육군으로 병장 만기 전역.
.
.
.
다른 인생을 사려고 했으나
오로지 박상오의 뒷바라지를 해오던 어머니가
농구선수로 돌아가라
권유를 했고
박상오는 다시 중앙대로 돌아간다.
학교에서는
전체의 물을 흐릴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며
그의 복귀를 반대하는 분위기였으나
박상오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인해
결국 다시 중앙대 농구부로 들어갔고
본래 실력이 있던 그는
중앙대의 중심으로
다시 거듭나기 시작하면서
졸업 후,
프로무대에
지명될 수 있게 되었다.
부산 KT 대들보, MVP 수상
200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로 부산 KT에 지명되면서
프로 데뷔했고
세 시즌동안
백업 포워드의 역할을 수행하며
조금씩 성장세.
하지만,
전창진 감독이 새롭게 부임하면서
박상오는 물 만난 물고기와 같이 활약하는데
10-11 시즌을 기점으로
전창진 감독이 이끄는
모션 오펜스의 중심이 되어
맹활약 하기 시작.
.
.
.
데뷔가 늦다보니
다른 대학 동기들에 비해
연차는 적었으나
그 해가 서른이 되는 나이였고
무려 시즌 평균 14.9점의 득점을 보여주는 등
팀의 기둥으로써
환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결국 이 해에
KT는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고
그 중심에 있던
박상오는
정규리그 MVP를 차지하는 등
KBL 커리어에서
최고의 순간을 만끽.
같은 해에
정규리그 활약에 비해
PO 무대에서는
비교적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쉽게 시즌을 마감했고
그 후에는
MVP를 받았던 시즌의 임팩트가 커서 그런지
나쁘지 않은 활약이긴 했으나
살~짝 아쉬운 정도로
시즌을 보냈다.
FA 이적, 서울 SK 유니폼 입다
11-12 시즌 후,
FA가 되면서 구단에서 제시한 4억을
거절하고 시장에 나왔으나
오잉~ 예상 밖에
그를 원하는 구단이 없었고
민망하려던 찰나
서울SK가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연봉 3억 2천만원을 제시했고
KT에게는 SK가
가지고 있는 1라운드 신인 지명권을 넘기는
조건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다음 해,
1라운드 1순위 지명권이 SK에게 돌아가며
KT로써는
박상오를 내주며
1픽 지명권을 얻게 되었다.
.
.
.
박상오는 분명
농구를 그야말로 잘하는 선수였고
궂은 일도
마다하지않고 뚝심있는
플레이를 통해
SK가 선두로 올라서며 유지하는 데
좋은 역할을 보여주었다.
결과론적이지만
박상오로 인해 1라운드 1순위 픽을 얻은
부산 KT는 장재석을 얻었고
그가 가능성은 있지만
부진하자
오히려 SK가 승자라는
언론들의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
14-15 시즌에는
무려 10kg이나 체중을 감량하며
가벼운 몸으로
슈팅 가드 포지션에서
활약하기 시작했고
슈팅 능력이 훨씬 더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며
팀의 득점 부분을
꽤나 비중높게 담당했다.
트레이드로 친정팀 KT 복귀
2015년 5월,
KT 오용준과 1:1 트레이드가 되어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이미 어느정도 노쇠화가 오며
전성기는 지난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노련미를 통해
쏠쏠한 활약을 보였고
KT에는
걸출한 포워드가 없다는 점은
박상오가 3,4번의
수비까지
해야하는 현실에 놓이며
그의 경기력도 떨어진 체력을 바탕으로
수비의 부담과 함께
좋지 못한 편.
마지막 소속팀은 오리온스
자신의 데뷔 시즌을 함께했던
추일승 감독의
고양 오리온스로 이적을 확정 짓게 되었고
노쇠화가 너무 크게와서
활용도가 있겠냐
라는 말이 무색하게
거~의 회춘모드를 보여주기시작.
18-19 시즌
전 경기 출전했고
PO 무대에서도 노장으로써의
알토란 같은 활약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며
은퇴할 것이라는 수많은 예상을 깨고
1년 추가 계약.
.
.
.
19-20 시즌에도
36경기에 출전하며 꾸준하게 활약했고
KBL에서 12번째로
6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시즌이 끝나고
다시 FA로 풀리게 되었으나
그는 미련없이 현역 은퇴를 선언하게 되면서
정들었던 코트를 떠나게 되었다.
박상오에 대한 TMI
01. 활용도가 정말 높은 선수였다
체격 자체가 탄탄하고
활동량이 많은 편이라 전술 구성을 짤 때에도
도움이 많이되는 유형이었고
수비에서도
3~5번 수비가 가능해
다양한 역할을 부여받았다.
SK 시절에는
슈팅 능력이 물에 올라서 2번으로써
뛰기도 했으며
대표적으로 공을 오래 만지지않고도
스스로 마무리 짓는
효율적인
농구를 하던 선수였다.
.
.
.
02. 전창진 감독으로 농구에 눈을 뜨다
기본적으로
좋은 실력을 가진 농구선수였으나
전창진 감독을 만나기 전,
그는 특별함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는 아니였는데
KT 감독으로 전창진이 오게 되면서
그는 KT 공격 농구에
중심이 되었고
정말 제대로 날개를 달아서
결국 첫 해에
팀의 정규리그 우승과 함께 MVP까지
받게 되었다.
.
.
.
03. 추일승 감독과 유투브 채널을 만들었다
2020년 7월,
자신의 은사였던 추일승 감독과 함께
" 나는 농구인이다 " 라는
이름으로
유투브 채널을 개설했다.
.
.
.
04. 육군 현역을 다녀온 농구선수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중앙대 시절, 본인 스스로 주전에서 밀리자
욱하는 마음에
농구를 때려치우고
군대에 지원해서 육군으로
병장 만기 전역한
굉장히 이채로운 케이스이다.
'스포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교수 설린저 마법, 울산 현대 모비스는 깨트릴 수 있을까? (0) | 2021.04.26 |
---|---|
토트넘 맨시티 무리뉴 위약금이 불러온 최악의 참사 (0) | 2021.04.26 |
손흥민 15호골 메이슨 감독대행 데뷔전 승리, 애들아 비길꺼야? (0) | 2021.04.22 |
임재현 별명은 임내쉬 혹은 임봉사, 전설의 중앙대 시절 주전 포인트 가드 (0) | 2021.04.21 |
신명호 KBL 최고의 수비수 신명호는 놔두라고 주인공 (0) | 2021.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