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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트넘 울버햄튼 무리뉴 떠나니 델레 알리가 웃으며 살아나다 2021.05.17
  • 김민수 아르헨티나 특급 나름 시대를 잘못만난 케이스의 포워드 2021.05.14
  • 김현중 한때 제 2의 김승현으로 불리던 포가, 현재는 스킬 트레이너 2021.05.14
  • 이광재 농구선수 출신 부모님을 둔 한때 KBL 대표하던 슈터 2021.05.14

토트넘 울버햄튼 무리뉴 떠나니 델레 알리가 웃으며 살아나다

2021. 5. 1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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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알리 듀오가 다시 뭉치는 중이다

토트넘과 울버햄튼의 리그 경기에서

이미 잔류가 확정되며

동기부여가

결여되어보이는

울버햄튼을 상대로

토트넘이 2:0 승리를 거두며

마지막까지

유로파리그 진출 티켓을 따내기 위한

희망(?)을 남기게 되었다.

 

결승골을 기록한

해리 케인과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MOM급 활약을 보인

호이비에르에 비해

더욱더 관심을 받았던 선수는

바로 델레 알리.

 

무리뉴 감독 체제에서

철저하게 벤치에 있는 시간들이 많았던 그가

무리뉴 경질 후,

다시 토트넘의 중심이자

주전이 되고 있으며

경기력도 점점 더 좋아지고있다.

 

 

 

 

알리가 웃기 시작했다

손흥민도 알리 따라 웃기 시작했다

알리의 최근 상승세를 보며

확실히 느낀 것은

선수는 경기장에서 뛰어야한다는 것.

 

무리뉴 체제에서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교체로 나오거나

컵대회 등에서

중용되었던

알리의 폼은 확실히

떨어져보였다.

 

.

.

.

 

하지만,

무리뉴 경질 후 

알리는 중용되며 주전으로 뛰기 시작했고

조금씩 좋았을 때의

폼이 돌아오며

토트넘 공격 중심에서

여러가지 역할을 해주고있다.

 

이 날 경기에서도

공격 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왕성한 활동량을 통해

압박을 가하고

득점과 연결되진 않았지만

스스로 상대편의 

공을 뺏은 후,

케인에게 좋은 패스를 안기며

득점과도 같은 장면을

만들어내기도했다.

 

절친 손흥민 역시

그라운드에서 알리와 함께 뛰니

표정도 더 밝아지고

확실히 시너지 효과를

내고있는 느낌.

 

 

 

 

 

토트넘, 희망을 이룰 수 있을까?

바뀐 머리스타일의 효과인가

2선에서

끝없는 압박과 움직임을 통해

상대를 위협하고

공격을 만들어가는 부분은 현대축구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확실히,

알리의 폼이 가장 좋았을 때

토트넘은 여러가지

공수에서

유리한 기억들이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남은 일정에서

알리의 꾸준한 활약은

여러가지 보탬이 될 전망.

 

.

.

.

 

현실적으로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위한

리그 4위까지는

불가능해진 상황 속에서

이제 현실적인 목표는 6위안에 들어서

내년 시즌, 유로파 리그라도

나갈 수 있게 하는 것.

 

물론, 리그에서

남은 경기를 모두 이긴다 할지라도

자력으로 진출을 

확정지을 수 없는 상황이기에

상황을 지켜봐야하지만

토트넘은 반드시

남은 경기를 모두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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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아르헨티나 특급 나름 시대를 잘못만난 케이스의 포워드

2021. 5. 1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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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능력이 좋았던 빅맨

대한민국, 아르헨티나 이중국적

포워드 포지션을 가진

농구선수로

혼혈이라는 이유로

관심도가 높아진 케이스로

국대에도 이름을

올린만큼 어느정도 실력이 검증 되었으나

3번 포지션을 뛰고싶은 개인과

4번 역할을 원했던

구단/감독과의

이견 차이로 인해

프로 무대에서는

오히려 활약도가 아쉬웠던 선수.

 

사실, 말이 아쉬운 거지

국내 선수에서

용병을 가장 잘 막는 선수 중 한 명이었고

마음만 먹으면

시즌 두자릿 수 득점을

올릴 수 있는

개인기량을 갖춘 선수였다.

 

 

 

 

경희대에서 한국농구를 경험하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김민수

한국인 어머니와

아르헨티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농구 역시

아르헨티나에서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별명도 " 아르헨티나 특급 "

한국 교포의 주선으로

국내 경희대학교에 테스트를 받았고

합격하여 처음으로

한국 농구 경험.

 

당시, 최부영 감독도

큰 신장에 다양한 장점을 가진 그를

3번이 아닌 4번으로

활용하려했고

그러한 국내 지도자들의 생각은

프로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

.

.

 

결과론적이지만

지금과 같이 국내농구의 흐름도

조금 바뀌어

신장이 큰 국내선수들도

충분히 능력이 있으면

골밑에 두지않고

외곽 플레이를 펼치는 시대라는 점에서

김민수가 조금 늦은 시기에

전성기를 보냈다면

조금 더

좋은 활약을 펼쳤을 수 있다는

일부 생각들이 존재한다.

 

결국 경희대에서의

좋은 활약과 기대감을 보여준 그는

2008년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지명되어

서울SK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운명의 드래프트, 서울SK로 향하다

외곽 플레이가 강점인 김민수 딜레마

하승진이 1순위를 차지한

2008 신인 드래프트에 함께 참가했던

김민수는 당당히

2순위로

서울SK 유니폼을 입었는데

사실, 김민수가

이 때에

동부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결과론적이지만

더 잘맞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동부는 김주성이라는

독보적인 국내 센터자원이 있었기에

오히려 내외곽을 모두

해줄 수 있는

포워드 자원이 필요했고

그 역할에 적절했던 선수가 김민수.

반면, 서울SK는

골밑을 지켜줄 수 있는

국내 자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큰 키의

김민수를 선택하며

그에게 4번 역할을 기대한 것이다.

 

.

.

.

 

데뷔 후,

2년동안 매 시즌 평균 14점을

넣는 등

확실히 득점력있는

능력있는 선수라는 걸 입증했지만

이러한 플레이가

외곽에서 주로 나온다는 것,

이것은 분명

김민수를 골밑 자원으로 기대했던

서울SK 구단에겐

딜레마로 작용했다.

 

그로인해

팀 밸런스는 조금씩 무너졌고

김민수 스스로도

몸에 맞지않은 옷을 입었다는 생각과 함께

그것 자체가

부진으로 이어지는 

시기를 겪게 되었다.

 

 

 

 

퐁당퐁당 경기력, 하지만 결국 우승

그토록 염원하던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

FA를 통해

박상오가 영입되고

신인급 최부경이 골밑을 지키며

김민수의 롤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자신만의 스타일로

팀의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2-13 시즌

서울SK는 정규리그 1위를 기록했는데

분명 우승 과정에서

김민수는

지분높은 활약을 보였고

한 때, 포지션의 애매함의 딜레마로

의욕이 떨어지는

경기력으로

팬들에게 질타를 받던

김민수의 평가는 높아졌으며

이 시즌을 끝으로

FA에서

대박을 터트리며 재계약 성공.

 

.

.

.

 

하지만, 

그의 경기력은 시즌을 거듭하며

말 그대로 퐁당퐁당 수준.

몇 경기를 잘하다가

다시 귀신같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등

믿을맨의 모습을

보여주지못했다.

 

16-17 시즌,

11월 리그 경기에서

팀 통산 3,927점을 기록하면서

종전 서장훈이 가지고 있던

팀 통산 개인 최다득점 기록을 갈아치우며

1위로 올라섰지만

그의 들쑥날쑥 경기력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또 한 번의

FA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부진한 기록에도

3년 3억 5천만원이라는

비교적 높은 금액으로

재계약에 성공했다.

 

.

.

.

 

그리고 마침내

17-18 시즌은 그와 SK에게

잊을 수 없는

시즌이 되었고

마침내 챔피언결정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

 

김민수는 특히

중요한 챔피언결정전 6차전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3점포를 기록하는 등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주며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오로지 서울SK에서만

뛰었던 프랜차이즈 스타로써

팀이 어려울 때와

좋을 때를

모두 경험한 김민수에게는 더욱더 특별한

우승으로 다가왔다.

 

 

 

 

 

노익장 과시, 하지만 은퇴 선언

고질적인 허리부상이 문제였다

우승 후,

서울SK의 상승세를 이어가기위해

노장 김민수 역시

시즌 초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문제는 허리부상.

 

고질적인 허리 디스크가 결국

수술로 이어졌고

폼이 많이 올라왔던

김민수에겐 아쉬운 상황이 되었는데

경기 출전은 적었으나

경쟁력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

.

.

 

하지만,

역시 허리부상은 선수에겐

고질적인 문제로

찾아올 수 밖에 없었고

허리의 문제로 골밑 수비에서도 부담을 안으며

또다시 외곽을 전전하며

찬스가 오면

3점을 던지는 제한적인 롤에

갖히게 되었다.

 

결국 20-21 시즌을 끝으로

김민수는 현역은퇴를 선언하며

코트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오로지 프로생활을

서울SK에서

했다는 이력을 본다면

그에게 구단에서

영구결번을 해줄 가능성은

매우 높아보인다.

 

 

 

 

김민수에 대한 TMI

 

 

 

01. 서울SK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2008년 서울SK 입단 후,

은퇴를 한 20-21시즌까지 오로지 SK에서만

활약했던 프랜차이즈 스타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팀의 우승을 이끄는 등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

.

.

 

02. KCC 상대로 특별히 잘했다

 

본인은 느끼고 있을 지 모르겠지만

기록상으로 봐도

확실히 전주KCC를 상대로

경기력이나 스탯이

가장 좋았으며

KCC의 골수 팬들은 SK를 상대할 때에

김민수를 항상 경계대상으로

삼기도했다.

 

.

.

.

 

03. 3번과 4번 딜레마에 빠졌던 선수

 

김민수의 능력은

이미 검증된 선수였다는 점에서

그가 자기가 원했던

3번 포지션을

밀고나가 계속 뛰었다면

더욱더 좋은 커리어를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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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중 한때 제 2의 김승현으로 불리던 포가, 현재는 스킬 트레이너

2021. 5. 1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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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제 2의 김승현으로 불렸던 선수

대한민국 국적

포인트가드 포지션을 가진 농구선수로

송도고-동국대 출신으로

같은 길을 걸었던

선배 김승현과 비교되며

한때 제 2의 김승현으로 불리기도했다.

 

프로에서는

여러가지 운이 좋지 않았다는 

표현이 어울릴만큼

생각보다

풀리지 않은 케이스로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다.

 

은퇴 후에는

스킬 트레이너로 활약하고 있으며

농구 관련 유튜브 채널에서도

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프로 데뷔 오리온스 -> 창원LG 이적

실력은 좋으나 주전으로 뛰기엔 아쉽다?

위에서도 언급했으나

가드의 명가로 불리는 송도고를 나왔고

대학도 동국대로 진학했는데

같은 길을 걸었던

선배가 KBL를

주름 잡았던 김승현이었다.

 

그리고

운명은 이어졌던걸까?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순위로

대구 오리온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그곳에서는 김승현이

부동의 주전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김현중이

뛸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

 

결국 1시즌을 보낸 후,

2:2 트레이드를 통해

창원LG로 이적을 하게 되었다.

 

배길태-김상영 <-> 정종선-김현중

 

.

.

.

 

LG 이적 후에도

백업가드의 위치는 바뀌지 않았고

상무 입대를 통해

변화를 가진 그는

복귀 후,

새로운 터닝포인트를 맞게 되는데

전역 후에 LG가 아닌

울산 모비스로

임대를 가게된 것.

 

KBL은 엄밀히 말해

임대라는 절차가 정식적으로

있지는 않은 형태라

김현중은 그 당시 스스로는

울산 모비스로

완전 이적을 한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고

언급하기도했다.

 

 

 

 

터닝 포인트 울산 모비스 임대시절

김현중의 전성기 시절

김현중은

상무 전역 후,

임대를 통해 울산 모비스에서

08-09 시즌을

딱 한 시즌동안 뛰었는데

사실 이 때가

김현중 프로 커리어의 전성기라고

말할 수 있다.

 

양동근의 군복무로

전체 전력이 많이 떨어져있던 모비스는

하위권으로 분류된 시즌이었는데

그 자리에 김현중이

자리하게 되면서

이 시즌, 모비스가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게된 것.

 

.

.

.

 

이 당시,

김현중은 포인트 가드로써의

패싱과 리딩은 물론

스스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공격력까지

제대로 뿜어내면서

사실상 모비스를 이끄는

중심이었고

 

플레이오프 무대에서도

활약이 기대됬으나

너무나도 아쉽게 시즌을 치르던 도중,

치명적인 발목부상을

당하게 되면서

시즌을 접게 되었고

따놓은 당상이라 여겨졌던

기량발전상 역시 출전경기미달로 놓치고

울산 모비스 역시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김현중의 공백을 느끼게 되면서

삼성에게 패하며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하게된다.

 

.

.

.

 

나 역시

울산 모비스의 오랜 팬이라

이 당시, 김현중 선수를 알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그의 모습을 보면

왠지 애잔한(?)

마음이 드는 것 같다.

 

밑의 영상은

그가 모비스 시절, 

보여주었던 극적 버저비터 장면.

애석하게도 상대팀이

자신을 임대로 보내버린 창원LG라는 점..ㅎ

 

https://youtu.be/GBcsBHCOmCs

 

 

 

 

김승현과의 또 악연(?), 그리고 KT 이적

점점 폼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시기

모비스에서의 활약을 본

창원LG는 김현중을 다시 팀으로 불러들였고

애초에 김현중을

샐러리캡 정리 차원으로

팔려고 했으나

활약도가 좋자

복귀 시킨 뒤, 주전으로 승격.

 

쏠쏠한 활약으로

팀의 보탬이 되주었는데

시즌 중간,

선배 김승현과의 또 한번의 악연을

부딪히게된다.

 

.

.

.

 

오리온스에 있던

김승현 영입을 갈구하던 창원LG는

김현중을 주는 조건을 붙여

구두합의를 이끌었으나

김승현 본인이

재활에 더욱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삼성으로 돌연 이적하게 되면서

트레이드에 껴있던

김현중만 어리둥절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

 

김현중은

구단에게 오리온스 이적에 대해

이미 얘기를 듣고

창원LG 선수들과

인사도 하고

짐을 싸서 대구로 넘어갈 준비가

끝난 상황이었기에

더욱더 황당한 상황과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었다.

 

.

.

.

 

결국 시즌이 끝난 후,

2:2 트레이드를 통해 부산KT로 이적했고

점점 더 폼이 떨어지면서

부진을 면치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시범경기도중, 용병과 부딪히며

치아 4개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하며

운도 따르지 않게 되었다.

 

참고로

당시 이루어졌던 2:2 트레이드는

 

김현중-오용준 <-> 김영환-양우섭

 

 

 

 

동부 이적, 현역은퇴 선언

간혹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폼이 많이 떨어졌다

원주 동부로 이적했고

김종범-김현중 <-> 이광재

2:1 트레이드였는데

확실히 폼이 많이 떨어진 시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허웅과 두경민이

확실히 주전으로 올라선 상황에서

노장 박지현이

백업 가드로 1옵션이기에

김현중의 자리는

점점 더 없는 상황.

 

.

.

.

 

15-16 시즌 후,

FA가 되면서 자유계약선수가 되었으나

곧장 현역은퇴를 선언하며

코트를 떠나게 되었고

오랜 시간

뛰었던 구단은 아니지만

DB 구단에서는

김현중의 은퇴식을 치뤄주면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되었다.

 

 

 

 

 

김현중에 대한 TMI

 

 

01. 스킬 트레이너로 제 2의 인생을 사는 중이다

 

은퇴 후,

코지/감독의 길이 아닌

스킬 트레이너로 인생을 살고 있으며

농구 관련 유튜브 채널에도

모습을 자주 드러내는 등

농구에 대한 사랑을

여기저기 표출(?)하고있다.

 

.

.

.

 

02. 김혁과 친분이 있다

연예계 농구에서

최고의 실력자로 평가받는 김혁과

친분이 있는 사이이며

동국대 시절,

00학번 동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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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농구선수 출신 부모님을 둔 한때 KBL 대표하던 슈터

2021. 5. 1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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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리그 최고의 슈터였다

대한민국 국적

슈팅가드 포지션을 가진 농구선수로

연세대 시절

양희종, 김태술과 함께

주축이 되어

부흥기를 이끌기도 했으며

프로에 와서는

전창진 감독 밑에서

한때 리그를 대표할 수 있는 슈팅가드로

활약하기도했다.

 

별다른 부상없이

폼이 급격하게 떨어지게 되면서

말년에는 조금 아쉽게

은퇴한 케이스.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농구선수 출신으로 알려지며

농구 2세대 선수이다.

 

 

 

 

연세대 3인방 -> 전성기 원주 동부 시절

동부 시절의 폼이 가장 좋았다

용산고를 졸업하고

연세대에 입학하게 되면서

양희종, 김태술과 함께

연세대 3인방으로 불리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꾸준한 성적으로

프로 데뷔를 앞두고 관심을 받았고

2007년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7순위로 지명되어

원주 동부 입단.

 

.

.

.

 

여담이지만

당시 동부 전창진 감독은

이광재의 아버지인 전 농구선수 출신

이왕돈씨와 절친 사이라

오히려 이광재가

팀에 합류한 후,

엄청나게 지옥의 훈련을 시켰다고

알려졌다.

 

그래서였을까?

첫 시즌에도 나름대로 주전 가드 자리를

받으며 좋은 활약을 펼쳤고

팀이 우승하게 되면서

프로 첫 시즌,

커리어에 반지를 끼게된다.

 

활약도가

나쁜 편은 아니었으나

돋보인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였고

오히려 군대 전역 후,

팀에 합류하여

리그를 대표할 수 있는

슈팅가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

.

 

하지만,

12-13 시즌 부상이 오게 되면서

부진이 시작되고

공격력도 떨어진 상태에서

항상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수비에서

더욱 구멍이 되면서

출전시간이 줄어들게 되었고

두경민, 박병우 등에게

주전경쟁에서 실패하고만다.

 

FA가 되어

동부와 5년간 2억 7천만원의 금액으로

계약을 맺었고

이 때에도

전체적인 평가는

너무 오버페이 아니냐는 분석.

 

그리고 곧장

트레이드 되어 부산KT로

유니폼을 갈아입게 되었다.

 

 

 

 

 

부진을 면치 못했던 KT 시절

떨어진 폼이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포인트 가드 김현중을 필두로

김종범이 같은 포지션에

위치한 KT에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리려 했으나

이미 떨어진 폼이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역시 KT로

팀을 옮긴 전창진 감독은

이광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팀의 에이스 조성민의 부상으로

그를 대신하여

3점 슈터의 모습을

기대했으나

성공률이 13.6%였으니

암담한 수준.

 

.

.

.

 

식스맨 자원들에게도

밀릴 정도가 되어

결국 이광재가 KT에서 뛸 자리는 없었고

2018년 6월,

아무런 추가적인 조건없이

본래 소속팀이었던

원주DB로

돌아가게되었다.

 

 

 

 

 

짧은 복귀, 그리고 현역은퇴

FA로 풀리며 바로 현역은퇴 선언했다

4년만에 

돌아간 친정팀이었으나

이 시즌, DB의 성적도 부진한 편이었고

그나마 얻은 기회에서

어느정도 회복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으나

확실히 신인 시절에

보여주었던 좋았던 폼에 비하면

너무 떨어진 상황이었다.

 

시즌을 마친 후,

FA가 되었고 그는 결국 선수생활을

정리하며 은퇴를 선언했다.

 

.

.

.

 

은퇴 후,

모교 연세대 코치로 부임했고

상무 농구단 코치에 이어

현재에는

안양고등학교 농구부 코치를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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