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아르헨티나 이중국적
포워드 포지션을 가진
농구선수로
혼혈이라는 이유로
관심도가 높아진 케이스로
국대에도 이름을
올린만큼 어느정도 실력이 검증 되었으나
3번 포지션을 뛰고싶은 개인과
4번 역할을 원했던
구단/감독과의
이견 차이로 인해
프로 무대에서는
오히려 활약도가 아쉬웠던 선수.
사실, 말이 아쉬운 거지
국내 선수에서
용병을 가장 잘 막는 선수 중 한 명이었고
마음만 먹으면
시즌 두자릿 수 득점을
올릴 수 있는
개인기량을 갖춘 선수였다.
경희대에서 한국농구를 경험하다
한국인 어머니와
아르헨티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농구 역시
아르헨티나에서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별명도 " 아르헨티나 특급 "
한국 교포의 주선으로
국내 경희대학교에 테스트를 받았고
합격하여 처음으로
한국 농구 경험.
당시, 최부영 감독도
큰 신장에 다양한 장점을 가진 그를
3번이 아닌 4번으로
활용하려했고
그러한 국내 지도자들의 생각은
프로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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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론적이지만
지금과 같이 국내농구의 흐름도
조금 바뀌어
신장이 큰 국내선수들도
충분히 능력이 있으면
골밑에 두지않고
외곽 플레이를 펼치는 시대라는 점에서
김민수가 조금 늦은 시기에
전성기를 보냈다면
조금 더
좋은 활약을 펼쳤을 수 있다는
일부 생각들이 존재한다.
결국 경희대에서의
좋은 활약과 기대감을 보여준 그는
2008년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지명되어
서울SK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운명의 드래프트, 서울SK로 향하다
하승진이 1순위를 차지한
2008 신인 드래프트에 함께 참가했던
김민수는 당당히
2순위로
서울SK 유니폼을 입었는데
사실, 김민수가
이 때에
동부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결과론적이지만
더 잘맞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동부는 김주성이라는
독보적인 국내 센터자원이 있었기에
오히려 내외곽을 모두
해줄 수 있는
포워드 자원이 필요했고
그 역할에 적절했던 선수가 김민수.
반면, 서울SK는
골밑을 지켜줄 수 있는
국내 자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큰 키의
김민수를 선택하며
그에게 4번 역할을 기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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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
2년동안 매 시즌 평균 14점을
넣는 등
확실히 득점력있는
능력있는 선수라는 걸 입증했지만
이러한 플레이가
외곽에서 주로 나온다는 것,
이것은 분명
김민수를 골밑 자원으로 기대했던
서울SK 구단에겐
딜레마로 작용했다.
그로인해
팀 밸런스는 조금씩 무너졌고
김민수 스스로도
몸에 맞지않은 옷을 입었다는 생각과 함께
그것 자체가
부진으로 이어지는
시기를 겪게 되었다.
퐁당퐁당 경기력, 하지만 결국 우승
FA를 통해
박상오가 영입되고
신인급 최부경이 골밑을 지키며
김민수의 롤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자신만의 스타일로
팀의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2-13 시즌
서울SK는 정규리그 1위를 기록했는데
분명 우승 과정에서
김민수는
지분높은 활약을 보였고
한 때, 포지션의 애매함의 딜레마로
의욕이 떨어지는
경기력으로
팬들에게 질타를 받던
김민수의 평가는 높아졌으며
이 시즌을 끝으로
FA에서
대박을 터트리며 재계약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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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경기력은 시즌을 거듭하며
말 그대로 퐁당퐁당 수준.
몇 경기를 잘하다가
다시 귀신같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등
믿을맨의 모습을
보여주지못했다.
16-17 시즌,
11월 리그 경기에서
팀 통산 3,927점을 기록하면서
종전 서장훈이 가지고 있던
팀 통산 개인 최다득점 기록을 갈아치우며
1위로 올라섰지만
그의 들쑥날쑥 경기력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또 한 번의
FA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부진한 기록에도
3년 3억 5천만원이라는
비교적 높은 금액으로
재계약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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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17-18 시즌은 그와 SK에게
잊을 수 없는
시즌이 되었고
마침내 챔피언결정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
김민수는 특히
중요한 챔피언결정전 6차전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3점포를 기록하는 등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주며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오로지 서울SK에서만
뛰었던 프랜차이즈 스타로써
팀이 어려울 때와
좋을 때를
모두 경험한 김민수에게는 더욱더 특별한
우승으로 다가왔다.
노익장 과시, 하지만 은퇴 선언
우승 후,
서울SK의 상승세를 이어가기위해
노장 김민수 역시
시즌 초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문제는 허리부상.
고질적인 허리 디스크가 결국
수술로 이어졌고
폼이 많이 올라왔던
김민수에겐 아쉬운 상황이 되었는데
경기 출전은 적었으나
경쟁력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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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시 허리부상은 선수에겐
고질적인 문제로
찾아올 수 밖에 없었고
허리의 문제로 골밑 수비에서도 부담을 안으며
또다시 외곽을 전전하며
찬스가 오면
3점을 던지는 제한적인 롤에
갖히게 되었다.
결국 20-21 시즌을 끝으로
김민수는 현역은퇴를 선언하며
코트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오로지 프로생활을
서울SK에서
했다는 이력을 본다면
그에게 구단에서
영구결번을 해줄 가능성은
매우 높아보인다.
김민수에 대한 TMI
01. 서울SK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2008년 서울SK 입단 후,
은퇴를 한 20-21시즌까지 오로지 SK에서만
활약했던 프랜차이즈 스타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팀의 우승을 이끄는 등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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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KCC 상대로 특별히 잘했다
본인은 느끼고 있을 지 모르겠지만
기록상으로 봐도
확실히 전주KCC를 상대로
경기력이나 스탯이
가장 좋았으며
KCC의 골수 팬들은 SK를 상대할 때에
김민수를 항상 경계대상으로
삼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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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3번과 4번 딜레마에 빠졌던 선수
김민수의 능력은
이미 검증된 선수였다는 점에서
그가 자기가 원했던
3번 포지션을
밀고나가 계속 뛰었다면
더욱더 좋은 커리어를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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