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ALA

반응형
  • 분류 전체보기
    • 영화N드라마
    • 정보공유
    • 스포츠
    • 특별한 정보
    • 유튜버 추천
  • 홈
  • 태그
  • 방명록
/ /
반응형

스포츠

166
반응형
  • 반 페르시 네덜란드 레전드,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맨유를 외쳤다 2021.04.15
  • 조동현 KBL 대표 쌍둥이 가드 동생 연세대 레전드 뚝심의 아이콘 2021.04.15
  • 조상현 KBL 대표 쌍둥이 슈터 형 연세대 레전드 소리없이 강한 남자 2021.04.15
  • 양희승 고려대 전성기 누빈 포워드 프로에선 나름 아쉬운 행보 2021.04.14

반 페르시 네덜란드 레전드,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맨유를 외쳤다

2021. 4. 15. 17:47
반응형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레전드 공격수

네덜란드 국적

스트라이커 포지션을 가진 축구선수로

레전드 공격수로 충분히

불릴 수 있는

실력과 커리어를 모두 지닌 선수.

 

페예노르트를 거쳐

아스날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으며

우승 커리어를 위해

라이벌격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나에게 맨유라고 외쳤다. "

 

명언(?)을 시전하며

아스날 팬들을 경악시켰고

하지만, 반 페르시는

결국 맨유로 이적하여서

그토록 원하던 우승 커리어를 쌓았다.

 

 

 

 

 

페예노르트에서 말썽을 일으키다

청소년기의 방황이었을까?

고향 유스팀에서

유망한 모습을 보이며 활약하던 그는

16세의 나이에

명문 페예노르트로

팀을 옮겨

프로 데뷔도 이루어냈다.

 

하지만,

경기 내외적으로

여러가지 사고를 치는 등

문제를 일으켰는데

밤문화를 즐기고

지각을 거~의 매일 하다시피 했으며

감독과 불화도 생기면서

결국 2004년

쫒기듯이

EPL 아스날로 이적하게 되었다.

 

.

.

.

 

분명 실력적으로는

유망함을 타고났던 선수였으나

그의 사생활을 비롯한

인성적인 면에서 박한 평가를 받았던 시기로

청소년기에 방황이랄까?

 

아스날 스카우터는

그의 인성적인 면은 배제하고 

실력적으로는

잠재적인 부분이 많다고 여겨 그를 영입했고

페예노르트 입장에서는

그를 빨리

보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는 지

당시 물가를 생각해도 굉장히 저렴한 편에

속하는 이적료로 팔아버렸는데

이적료는

단돈 2.75m 파운드였고

비교를 하자면

박주영이 AS모나코에서 아스날로 올 때

이적료가 3m였다.

 

 

 

 

 

 

방황을 거쳐 아스날 중심이 되다

아스날의 에이스로 거듭나다

아스날 이적 후,

초반에는 불같은 성격을 감추지 못하며

상대 선수들과 싸우고

사생활적으로도

강간 혐의로 기소되는 등

말썽쟁이 캐릭터.

 

하지만,

벵거 감독의 아빠와같은 지원과

베르감프, 앙리 등

자신이 우상시 여겼던 

슈퍼스타들의 멘터링을 받으며

조금씩 안정세를 찾았고

의족이라 불리던 

오른발까지 훨~씬 좋아진 킥력을 보여주는 등

득점력까지 향상.

 

.

.

.

 

10-11 시즌을 앞두고

예전 우상 베르캄프가 달았던 

등번호 10번을 물려 받으며

아스날에서 에이스 역할을 인정 받은 바 있으며

아데바요르가 떠나며

사실상 공석이 되었던

주전 공격수 자리에

독보적으로 앉으며

에이스 역할을 하기 시작.

 

오프 더 볼

움직임이 거~의 시망급이라

경기 중에는

두각을 거의 못 나타내다가 왼발로 골을 넣으며

밥값을 했다는 평가를 받던 그가

나이가 들면서

경험을 더하고 플레이스타일이

변모하기 시작하면서

제 2의 베르캄프와 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득점은 물론

어시스트에도 눈을 뜨기 시작.

 

.

.

.

 

11-12 시즌에는

파브레가스가 바르셀로나로 떠나게 되면서

주장을 맡게 되었고

그 해에

책임감을 제대로 느꼈는 지

꾸준한 득점포로

리그 전 경기 출장에 30골을 넣으며

득점왕을 차지.

 

반 페르시의 개인성적은

나날히 성장하는데

그에 반해 아스날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아스날 팬들은

예전 사례들을 토대로

반 페르시 역시

2년의 계약 기간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타팀으로 이적할 것을

두려워하던 찰나.....

 

유벤투스, 안지, 맨시티 등과

계약할 것이라는

예상기사들이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

그의 다음 행선지는

뜻밖에도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결국 그는

유명한 명언(?)을 남기며

실제로 맨유로 이적을 선택하게 되었고

아스날 팬들은

여러가지로 초 멘붕...

 

 

 

 

 

라이벌 맨유 이적, 그리고 끝내 우승

맨유에서 꿈에 그리던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

30이 가까운 나이에

24m 파운드의 이적료를 발생시키며

이적을 했으니

아스날 입장에서는

꽤나 짭짤한 이적료를 챙겼다고

정신승리 할 수 있겠지만

그 대상자가

에이스 반 페르시 였으니

두고두고 

뒷골이 땡길 사건.

 

결국 첫 시즌부터

반 페르시는 맨유의 우승을 이끌어내며

통산 20번째 우승의 주역이 되었고

친정팀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득점을 올린 뒤,

세레모니를 하지 않는 등

여러가지 이슈가 될 수 있는 장면들을

만들기도 했다.

 

첫 해에

리그 득점왕 수상과 함께

맨유 팬들이 선정한 최고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2년 연속 EPL 올해의 팀 수상까지.

 

리그 38라운드에서도

득점포를 가동하며 우승 피날레와 함께

26골로 득점왕 축포를 쏘았는데

이 시즌에는

맨유가 점점 폼이 

떨어지고 있는 시기였다는 점에서

반 페르시가 여러차례

하드캐리로 팀을 이끌며

우승했다는 높은 평가와 함께

그의 영입이

신의 한수가 되었다.

 

.

.

.

 

그 후,

퍼거슨 감독이 은퇴하면서

맨유는 암흑기를 동시에 맞이하게되고

반 페르시 역시

폼이 점점 더 떨어지면서

혼자 그 무게를

담당하기엔 

맨유의 부진은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고

설상가상으로

부상까지 겹치게 되면서

첫 시즌 보여주었던

폼을 찾지 못하는 시기가 길어졌다.

 

14-15 시즌은

그가 맨유에서 뛰는 

마지막 시즌이 되었고

시즌 10골을 넣으며 두자리수 득점으로

마감을 했으나

그가 가지고 있는

이름값에 비해서는 살~짝

아쉬운 모습.

 

폼이 떨어졌기에

그가 더이상 맨유에서 주전으로 뛰기엔

한계가 있었으나

그의 성격상

서브로써 만족을 하지 못했고

결국 맨유는

계약기간을 1년 남겨두고있는 반 페르시를

이적시키기위해

매물로 내놓았고

터키 페네르바흐체가 확 물며

이적하게 되었다.

 

 

 

 

 

새로운 도전, 터키리그

클래스는 어디 가지 않는다

당시 페네르바흐체는

분노의 영입을 시전하며 거침없이 선수영입을

가던 시기였고

무려 1만5천명이 넘는

팬들 사이에서

거하게 입단식을 갖고

새출발 시작.

 

생각보다

출전시간의 제약을 받자

반 페르시는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며 경기 도중에

화면에 잡힌 모습은

항상 무뚝뚝...

 

첫 시즌,

리그에서 16골을 넣으며

클래스를 보였지만 유로파 리그에서는

1어시스트에 그치며

아쉬운 상황 속

지금의 행보라면 다른 팀으로

이적할 가능성이 높아보였지만 의외로

팀에 남았다.

 

여담으로

16-17 시즌

유로파 리그 조추첨을 통해

같은 조에

맨유, 페예노르트와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과거를 함께 했던

친정팀들을

상대하게 되었고

경기력은 무난무난 부진한 편.

 

 

 

 

 

페예노르트 복귀, 깔끔한 은퇴

컵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2018년 1월,

겨울이적시장을 통해

프로데뷔를 가졌던 페예노르트로 복귀했고

2월에 커리어 통산 300호골을

작렬 시키더니

컵대회 결승골에서

추가골을넣으며

팀의 우승까지 이끌었다.

 

18-19 시즌에는

팀의 주장으로 선정되어 리더쉽을 보였고

뇌쇠화가 되어

공격수 아닌

미드필더로 나와 

공수조율을 해주는 역할 담당.

그리고 그 해에

시즌이 끝나면서 

자연스럽게 현역은퇴를 선언했다.

 

 

 

 

 

국가대표로써의 반 페르시

현재 기준, 네덜란드 A매치 최다득점자

2005년 

A대표로 처음 데뷔했고

2006 독일월드컵이 첫 메이저 대회가 되어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활약.

 

그 후,

메이저 대회에서는

꽤나 부진한 모습을 이어가다가

그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던 대회는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직도 회자되고있는 돌고래와도 같은

다이빙 헤딩골을 포함하여

대회에서 4골을 넣으며

팀의 3위를 이끌었고

반 페르시의 존재감은 

득점 이외에도

꽤나 두드러진 편.

 

.

.

.

 

그 후에도

대표팀 명단에 꾸준하게 이름을 올리며

나름대로 활약했으나

네덜란드 국대가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진출에

실패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국대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A매치 102경기 50골

 

 

 

 

 

로빈 반 페르시에 대한 TMI

 

 

 

01. 뛰어난 재능, 뛰어나지못한 피지컬

 

반 페르시의 재능은

상상이상급이다.

퍼스트 터치가 예술이고

왼발로 터트리는 득점력은

가히 퍼펙트하며

오른발에 적응까지 완료하며

말년에는

좌우 발을 가리지 않고

훌륭한 슈팅과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다만, 그는

꾸준하게 부상을 달고 살았으며

로벤 과 함께

FC 호스피탈의 멤버로

불릴 정도로 중요한 순간마다

부상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은 선수였다.

 

.

.

.

 

02. A매치 최다득점자, 하지만..?

 

50골을 넣으며

네덜란드 국대 역대 A매치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결과적인

스탯만 보면

누구보다 훌륭하다고 할 수 있지만

정작 중요한 대회의

토너먼트에선

득점포가 적은 편이라

분명 훌륭한 공격수임에는 사실이 없지만

살~짝 아쉬움이 남는 편이다.

 

.

.

.

 

03. 루니에게 바보취급을 당했다?!

웨인 루니는 인터뷰를 통해

맨유 동료 중,

가장 속이기 쉬운 선수로 반 페르시를 지목했으며

경기장 밖에서는

경기 중 

보여주는 카리스마와 다르게

어설픈 면이

많다고 밝힌 적이 있다.

 

.

.

.

 

04. 반 페르시의 맨유 합류, 카카와가 피를 봤다?!

사실 퍼거슨 감독은

카가와를 맨유로 데려오면서

루니를 원톱으로 두고 그 밑에 카카와를 위치해

전술을 구상하고 있었으나

반 페르시가

극적으로 맨유에 합류하게 되면서

반 페르시가 원톱을 서고

그 밑에 루니가

위치하는 전술로 바뀌게 되었고

카가와는 자연스럽게

베스트11에서 밀리게 되었다.

 

.

.

.

 

05. 인도네시아계 네덜란드인이다

 

그의 모습이나

이름으로는 전~혀 유추가 되지않는 부분인데

인도네시아는 예전

네덜란드 식민 지배를 받았고

그 중, 반 페르시도

한 명이다.

 

.

.

.

 

06. 탁구실력이 수준급이다

 

축구 이외의

잘하는 스포츠로 탁구를 꼽은 바 있으며

실제로 탁구실력이

굉장히 좋은 편이라고 알려졌다.

 

.

.

.

 

07. 송종국과 함께 뛰던 시절이 있었다

페예노르트 시절,

송종국과 함께 뛰었던 시절이 있었으며

송종국의 전 소속팀

부산과의 평가전을 위해

한국을 찾았던 적도 있었다.

 

.

.

.

 

08. 영국 애기 팬을 울린 적이 있다

반 페르시가

영국무대를 떠나 터키 리그로

이적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4살짜리 영국 애기 팬이

슬퍼하는 모습이

유튜브 영상을 통해 공개가 되었고

터키 페네르바흐체 회장은

그 아이를 초대해

반 페르시와의 만남을

주선해주기도했다.

 

.

.

.

 

09. 월드컵에서 진기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월드컵에서

유일무이하게 득점에 관련하여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왼발, 오른발, 머리, 프리킥, 페널티킥으로

모두 득점을 한 것.

(왼발과 오른발은 세트피스가 아닌

경기 도중의 득점상황.)

 

.

.

.

 

10. 부모님이 예술가이다 + 베르캄프와의 관계

반 페르시의 부모님은

모두 예술가이며

그의 아버지는 베르캄프가 은퇴할 때에

베르캄프를 모티브로한

작품을 만들어

선물한 것으로 유명하다.

반 페르시는 일찍히 베르캄프의 플레이를 보며

우상시 여기며 자라왔던 인물로

그 아버지의 예술작품을

선물로 받은

베르캄프가 굉장히

감동했다는 후문.

 

.

.

.

 

11. 월드컵의 역사상에 남을 헤딩골을 넣었다

youtu.be/JJB2PPAB20k

말이 필요없다.

그냥 득점 장면을 감상하면 될 듯....

이외에도 클럽에서도

꽤나 많은

원더골을 만들어냈다.

 

 

반응형

'스포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훈 양홍석 지금은 패했으나 미래는 매우 밝다  (0) 2021.04.16
라마커스 알드리지 미들레인지를 지배했던 빅맨, 심장이 그를 멈추게 하다  (0) 2021.04.16
조동현 KBL 대표 쌍둥이 가드 동생 연세대 레전드 뚝심의 아이콘  (0) 2021.04.15
조상현 KBL 대표 쌍둥이 슈터 형 연세대 레전드 소리없이 강한 남자  (0) 2021.04.15
양희승 고려대 전성기 누빈 포워드 프로에선 나름 아쉬운 행보  (0) 2021.04.14

조동현 KBL 대표 쌍둥이 가드 동생 연세대 레전드 뚝심의 아이콘

2021. 4. 15. 14:10
반응형

연세대 출신의 쌍둥이 가드 

대한민국 국적

가드 포지션을 가진 농구선수로

형 조상현과 함께

KBL을 대표하는 

쌍둥이 농구선수로 유명하다.

 

형에 비해

공격력이 약하고

주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수비력이 좋고

궂은 일을 도맡는 등

자신만의 스타일을 통해

KBL에서 꽤나

오랫동안 롱런한 스타일.

 

.

.

.

 

현역 은퇴 후,

형보다 지도자 생활을 빠르게 시작했으며

비교적 젊은 나이에

KT 감독 자리에 오르면서

나름 파격적인 행보를

보내는 듯 했으나

팀 성적은 많이 안좋은 편이었고

결국 감독에서 물러나고

현재에는

자신의 스승인

유재학 감독 밑에서

울산 모비스 코치로 부임 중이다.

 

 

 

 

 

형제는 용감했다, 연세대 시절

왼쪽이 조동현이다

형 조상현과 함께

대전고에서 팀을 상위권으로 이끌었고

졸업 후, 연세대 진학.

 

농구대잔치 

마지막 전성기를 경험한 세대로

형에 비해서

능력은 조금 부족하다는

박한 평가를 받았으나

그래도 연세대 일원으로써 우승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

.

.

 

1999년 KBL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였던

형과는 달리

8순위로 인천대우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프로 생활을 하며

형과 지속적으로 비교가 되며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강했으나

그럼에도 본인 스타일로

KBL에서

나름대로 롱런하게된다.

 

 

 

 

 

유재학과 함께했던 인천 시절

대우-신세기-SK빅스-전자랜드 행보를 함께하다

첫 시즌부터

날라다녔던 형 조상현에 비해서

활약도가 낮았지만

그럼에도 시즌 평균 10점 이상을 기록할만큼

평균 이상은 해줬다.

 

꾸준한 성장세를 바탕으로

01-02 시즌

기량발전상 수상을 경험한 바 있으며

공격보단 수비에서

장점을 보이며

 

수비와 조직력을 중요시하는

유재학 감독과

궁합이 잘 맞는 편.

 

.

.

.

 

FA가 되었던

2004년까지 팀을 계속 바꾸었던

인천에서 뛰면서

대우를 시작으로

전자랜드로 바뀔 때 까지 함께 했으며

그의 수비력과 꾸준함을

높이 샀던

부산 KTF가 그를

영입하게 되면서 정들었던 팀을 떠나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되었다.

 

 

 

 

 

KT 이적, 그 인연이 생각보다 깊다

은퇴하기 전까지 KT에서 뛰게 되었다

04-05 시즌을 마친 후,

조동현에겐 개인적으로 문제가 생겼는데

그 당시, 프로야구 선수들의

병역비리 문제가

터지게 되면서

병무청의 기준이 빡세짐에 따라

무릎이 좋지않아

사실상 면제가 확정적이었던 

그가 4급을 받아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의 공백이 생겨버린 것.

 

수많은 언론들이

2년의 공백을 통해 조동현의 재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보았으나

2년 후, 복귀한 그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고

사령탑 전창진 감독 밑에서 

두 시즌 연속

전 경기 출장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였다.

 

.

.

.

 

공격에선 한계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수비력을 바탕으로

조동현은 상대편 가드는 물론

포워드 수비까지

가능했기에

감독으로써는 수비 전술에서

조동현 카드가

쓰임이 많았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되었고

그 꾸준함을 바탕으로

10-11 시즌에는

리그 수비 베스트5에 이름을 올리며

성실함을 인정 받았다.

 

.

.

.

 

조동현은 꾸준했으나

은퇴가 다가오는 시점까지 

챔피언 결정전 진출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게

개인적으로 아쉬운 커리어.

 

여러 번 기회가 있었으나

종종 실패하거나

팀이 챔피언결정전 진출한 시기엔

군대에 있는 등

타이밍이 맞지 않았고

결국 12-13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나며

조금은 아쉬운 마무리가 되었다.

 

 

 

 

 

조동현에 대한 TMI

 

 

 

01. 부산 KT 감독으로 "양날의 검"이었다

 

굉장히 이른 나이에

부산KT 감독 자리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는데

그의 감독 평가는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부분이

극명하게 나뉘는 편.

일단, 이해 할 수 없는 전술이나 경기 운영이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선수 운이 없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하지만, 다른 걸 떠나서

그가 부산 KT 감독으로 팬들에게

인정(?)을 받는 부분은

신인 드래프트에서 

허훈과 양홍석을 모두 데려온 것.

(그것만으로도 할 일 다했다..ㅎ)

 

.

.

.

 

02. 형에게 항상 평가가 밀렸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쌍둥이기때문에 두 선수는 항상 비교될 수 밖에 없고

형 조상현이

실력적으로 더 뛰어났고

공격력이 좋다보니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밖에...

그래도 조동현 역시

수비적인 면에서 인정을 받았으니

떳떳할 만 하다.

 

.

.

.

 

03. 유재학 감독과 인연이 깊다

선수 시절,

유재학 감독 밑에서 농구를 배웠고

전술을 배웠던 그가

결국 은퇴 후,

돌고돌아 유재학 감독 밑에서

코치를 하고 있으며

유재학이 그를 살뜰히 챙기는 등 

아끼는 듯 하다.

 

.

.

.

 

03. KBL 역대 초장거리 버저비터 주인공이다

youtu.be/n_xG_5-WK1Q

영상 거의 막판에 등장하는

조동현의 약 25m 거리의 버저비터 장면은

서장훈의 놀라운 표정과 함께

지금까지도

KBL 최장거리 버저비터

기록으로 남아있다.

 

 

 

2021.04.15 - [스포츠] - 조상현 KBL 대표 쌍둥이 슈터 형 연세대 레전드 소리없이 강한 남자

 

조상현 KBL 대표 쌍둥이 슈터 형 연세대 레전드 소리없이 강한 남자

대한민국 국적 슈팅가드와 스몰 포워드 포지션을 가진 농구선수로 대표적인 쌍둥이 형제 농구 선수로 동생 조동현과 함께 아마추어 시절을 함께했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동생에 비해 공격력을

holala.tistory.com

 

 

반응형

'스포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마커스 알드리지 미들레인지를 지배했던 빅맨, 심장이 그를 멈추게 하다  (0) 2021.04.16
반 페르시 네덜란드 레전드,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맨유를 외쳤다  (0) 2021.04.15
조상현 KBL 대표 쌍둥이 슈터 형 연세대 레전드 소리없이 강한 남자  (0) 2021.04.15
양희승 고려대 전성기 누빈 포워드 프로에선 나름 아쉬운 행보  (0) 2021.04.14
해리 케인 포체티노의 전화 그리고 레알까지 움직였다  (0) 2021.04.13

조상현 KBL 대표 쌍둥이 슈터 형 연세대 레전드 소리없이 강한 남자

2021. 4. 15. 12:04
반응형

연세대 출신, 조동현의 쌍둥이 형

대한민국 국적

슈팅가드와 스몰 포워드 포지션을 가진

농구선수로

대표적인 쌍둥이 형제

농구 선수로 동생 조동현과 함께

아마추어 시절을 함께했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동생에 비해

공격력을 비롯하여 더 많은 재능을

가졌다는 평가와 함께

형만한 아우가

없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묵직한 성격답게

소리소문없이

KBL에서 많은 기록들을 꽤나 쌓아가는 등

실력에 비해 관심도나

주목도는 나름 부족했던 편.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가장 최근에는 김상식 감독 밑에서

남자 농구대표팀 코치를

수행하기도 했다.

 

 

 

 

 

연세대의 주포로 활약했던 시절

정말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대전고 시절,

동생과 함께 팀을 상위권에 올려 놓으며

유망함을 인정 받았고

그 활약을 통해

연세대 입학에 성공.

 

1995년에는

황성인, 조우현, 이규섭, 김성철 등

기량이 좋았던 선수들과

청소년대표로

함께 활약하며

결승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하는 데

멋진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다.

 

.

.

.

 

연세대 진학도

쌍둥이 동생 조동현과 함께 했고

서장훈이 미국 유학으로

공백이 있었으나

우지원, 김훈 등 슈터들의 선배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여주더니

2학년부터는

완벽하게 주전 포워드로 자리매김하면서

복귀한 서장훈 등

기라성 같은 자원들과 함께

연세대를 이끌며

결국 96-97 농구대잔치에서 

상무를 꺾고

사상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골드뱅크 -> SK, 크리스마스 빅딜

프로 무대에서도 자신의 기량을 입증하다

1999년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광주 골드뱅크에 지명되며 프로 무대 진출.

1순위라는 것만으로도

그의 기대치는

엄청 높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그것도 잠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KBL 역사상 크리스마스 빅딜 트레이드로

그는 SK로 이적하게 되는데

트레이드 대상자가

무려 현주엽.

 

.

.

.

 

SK에 현주엽은

포지션상 지속적으로 겹치는 모습을 보이며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당시 최인선 감독은

활약도가 좋은

조상현이 SK에 어울리겠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내린 결정.

 

결국 조상현은

첫 시즌 도중, 팀을 옮기게 되었고

그 곳에서도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며

평균 18,4점의

득점력을 보여주면서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자리 잡았지만

아쉽게 그 해 신인왕을

놓치고 말았다.

 

지금으로써는

조금 어이없는 부분이기는 한데

그 해에

리그 MVP를 같은 팀

서장훈이 수상하게 되었고

같은 팀에서

MVP와 신인왕을 받는 건 조금 아니다!라는

불문율이 작용하던 시기라

결국 좋은 성적에도

조상현은 수상에 실패.

 

.

.

.

 

신인왕 수상과 별개로

조상현의 능력치와 포텐은 제대로 터졌고

이듬해 20.6점의 

평균 득점을 기록하는 등

존재감 폭발,

01-02 시즌에는

팀을 챔피언결정전으로 올려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까지 수행.

 

그 시즌을 끝으로

상무에 입대하게 되었고

2002 부산 아시안게임 대표로 뽑히며

결국 극적인 우승을 이뤘지만

당시에는 병역면제제도가

확립이 안되었던 때라

금메달 획득에도

남은 병역생활을 마쳐야했다.

 

.

.

.

 

전역 후,

SK에 복귀했으나 

에이스였던 그를 생각보다 반기지 않는

눈치가 보였고

뚝심있는 플레이를 보여주지만

화려하지않은 그를

구단에서는 결국

트레이드를 통해 부산 KTF로 이적시켜버렸다.

그 때의 이루어진

3:3 트레이드는

 

조상현, 황진원, 이한권이 KTF로 가고

방성윤, 김기만, 정락영이 SK로 이동하는 것이였고

조상현과 방성윤이

껴있다는 점에서

KBL 역사에 남을 큰 트레이드였고

조상현은 큰 트레이드 중심에

항상 중심에 있게 되었다.

 

 

 

 

 

 

LG 그리고 오리온에서 은퇴

마지막까지 꾸준했던 자원

트레이드 되었던

부산 KTF에서 남은 반 시즌을 뛰엇으나

FA가 된 후,

재계약을 이루어내지 못했고

결국 새로운 팀 

창원 LG와 계약을 맺었다.

 

첫 시즌,

평균 12점의 득점을 기록하는 등

알뜰한 활약을 보였으나

06-07 시즌을 

기점으로 조금씩 부진한 모습을 보였는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3점 라인이 길어지며

정확도 떨어지기 시작한 것.

 

결국 창원 LG에서

꾸준하게 뛰기는 했으나 활약도가 점점 더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식스맨 자원으로

분류되는 등

냉정하게 말하자면

창원LG의 조상현 FA 영입은

성공보단 실패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

.

 

2011년 오용준과 1:1 트레이드를 통해

고양 오리온스로 이적했고

선수층 나이가

젊다는 점에서 노장 조상현은

여러가지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구단의 판단.

 

그리고 그 판단은

정확했고

역시 식스맨으로 분류되기는 했으나

간간히 터져주는

3점포를 바탕으로

쏠쏠하게 활약해주면서

 

통산 6,000득점과

3점 1,000개 돌파도 오리온스 시절에

기록할 수 있었다.

 

.

.

.

 

12-13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하며 코트를 떠났고

곧장 고양 오리온스

코치로 합류하며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조상현에 대한 TMI

 

 

01. 대형 트레이드 중심에 항상 그가 있다

 

조상현은 선수생활을 하며

꽤나 많은 트레이드를 경험한 바 있는데

모두 굵직굵직하다.

첫 시즌, 트레이드에선

현주엽과 유니폼을 바꿔 입은 바 있으며

또 한 번 트레이드에서는

3:3 트레이드였으나

사실상 중심은

조상현과 방성윤이었다.

 

.

.

.

 

02. 멀어진 3점라인의 최대 피해자 중 한 명

 

KBL은 3점라인을

더욱더 늘렸던 시기가 존재했고

조상현을 비롯하여 꽤나 여러 명의 선수들이

늘어난 3점라인에

고전을 하며

부진의 늪에 빠지기도했다.

 

.

.

.

 

03.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쌍둥이 농구선수

과연 누가 조상현일까?

포스팅을 하느라 조상현 관련 사진을

지속해서 보다보니

나는 어느정도 감이 오는 것 같긴한데...ㅎㅎ

두 선수 모두

아마추어 시절에는

한 팀에서 뛰면서 플레이했고

프로에 와서는

한 팀에서 뛴 적은 없는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동생에 비해 형 조상현이 조금 더

공격력이 뛰어나고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2021.04.15 - [스포츠] - 조동현 KBL 대표 쌍둥이 가드 동생 연세대 레전드 뚝심의 아이콘

 

조동현 KBL 대표 쌍둥이 가드 동생 연세대 레전드 뚝심의 아이콘

대한민국 국적 가드 포지션을 가진 농구선수로 형 조상현과 함께 KBL을 대표하는 쌍둥이 농구선수로 유명하다. 형에 비해 공격력이 약하고 주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수비력이 좋고 궂

holala.tistory.com

 

반응형

'스포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 페르시 네덜란드 레전드,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맨유를 외쳤다  (0) 2021.04.15
조동현 KBL 대표 쌍둥이 가드 동생 연세대 레전드 뚝심의 아이콘  (0) 2021.04.15
양희승 고려대 전성기 누빈 포워드 프로에선 나름 아쉬운 행보  (0) 2021.04.14
해리 케인 포체티노의 전화 그리고 레알까지 움직였다  (0) 2021.04.13
앨버트 화이트 KBL 역대 최다 트리플더블의 주인공, 다재다능의 아이콘  (0) 2021.04.13

양희승 고려대 전성기 누빈 포워드 프로에선 나름 아쉬운 행보

2021. 4. 14. 12:18
반응형

고려대 출신의 스몰 포워드

대한민국 국적

스몰 포워드 포지션을 가진 농구선수로

고려대 전성기 시절을

함께 했던 슈터로

오히려 프로 무대에서는

그 명성에 비해

커리어가 아쉽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

 

은퇴 후,

지도자 길이 아닌

사업가 혹은 방송인으로써 모습을 

보인 바 있으며

최근에는

공식적인 행보가

거~의 없는 편이다.

 

 

 

 

 

고려대 시절의 양희승

은퇴 후, 이벤트 경기의 모습

광주고 졸업 후,

고려대에 진학하게 되면서

양희승은 농구에 눈을 떴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당시 최고의 무대였던

농구대잔치에서

고려대 주전 포워드로 뛰면서

이름을 제대로 알렸다.

 

고려대 멤버들과

정상을 노렸으나 아쉽게 우승에는 실패,

하지만 외곽 플레이와

돌파까지 되는 등

다양한 공격 옵션을 통해

존재감을 제대로

발휘했던 양희승의 가치는 더욱더 높아졌고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의 전성기가

고려대 시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

.

.

 

결국 대학 졸업 후,

1997년 새롭게 창간된 KBL 리그와 맞물려

4억 5천만원의

당시 굉장히 높은 계약금을 받으며

창원LG 유니폼을 입으며

창단 멤버로

함께 하게 되었다.

 

 

 

 

 

부상과 부진의 시간, LG & KCC

프로 무대는 녹록치 않았다

첫 해부터

아킬레스 건이 끊어지는

큰 부상을 당하게 되면서 팀에 이탈한 

양희승은 그대로

시즌아웃 판정.

 

결국 이 부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심한 것으로 밝혀져

내리 두 시즌을

거~의 통째로 날렸고

98-99 시즌

후반기에 극적으로 복귀를 하면서

어느정도 재기 성공.

 

.

.

.

 

99-00 시즌

전 경기에 출전하며

13점의 평균득점을 기록하는 등

주전 포워드로

어느정도 이름값을 했고

폼이 점점 더 올라가는 시점에서

포워드 중심의 농구를

계획하고있던

신선우 감독이 양희승을 원했고

결국 조성원과 트레이드로

현대, 현재의

KCC로 이적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

두 시즌간 활약하며

고려대 시절, 보여주었던 파괴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팀에 녹아들며

꾸준하게 좋은 활약을 보였고

FA가 되면서

2억 6천만원의 연봉과 함께

SBS로 이적했다.

 

 

 

 

폼이 좋았던 SBS(현 KT&G) 시절

단선생과 함께했던 시절

안양 SBS 유니폼을 입으며

또 다른 국내 포워드 김성철과 함께

팀을 이끌며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고

양희승은 리그에서

평균 15점을 넣어주는 등

FA로 이적하며

좋은 영입의 사례로 꼽힐 정도의 활약.

 

04-05 시즌에는

단선생 단테 존스가 

대체 용병으로 팀에 합류하게 되면서

리그 15연승과 함께

챔피언결정전 우승까지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으나

 

4강 PO 무대에서

KCC에게 아쉽게 패하게 되면서

4강 진출에

만족해야했다.

 

.

.

.

 

06-07 시즌에도

15.8점의 평균득점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보인 뒤,

FA자격을 얻었으나

KT&G에서는

서서히 노쇠화가 올 것으로 여겨졌던

양희승과 재계약을 포기했고

결국 부산 KTF가

그를 영입하며

양희승은 또 한번 팀을 옮겼다.

 

 

 

 

 

노쇠화가 왔던 부산 KTF 시절

부산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황진원-옥범준을 보내고

양희승을 받는 1:2 트레이드를 통해

부산 유니폼을 입었고

KT&G가

양희승의 노쇠화를 걱정하며

그를 보냈던 건

그야말로 사실이 되었다.

 

어깨와 발목이

수시로 부상이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양희승은 공격적인 역할을

하기엔 한계가 있었고

수비까지 안되니

그야말로 계륵이 된 것.

 

.

.

.

 

더불어

트레이드 대상자였던

황진원이 KT&G로 넘어가 펄펄 날자

부산 팬들에겐

여러가지로 안타까운 상황.

부산 KTF 감독으로

전창진 감독이 새롭게 자리하게 되면서

그는 곧장

리빌딩 명목으로

양희승을 웨이버로 방출했고

새로운 팀을 찾던

그에게 손길을 뻗은 구단이 하나도 없자

조금은 쓸쓸하게 은퇴를 선언했다.

 

 

 

 

 

양희승에 대한 TMI

 

 

 

01. KBL 샐캡제도의 피해자가 되었다

 

창원LG 입단 시,

계약금과 연봉을 포함하여 5억원을 받았는데

KBL은 NBA의 정책대로

샐러리캡 제도를

새롭게 만들었고

계약금을 받았던 선수들을 대상으로

추후 연봉에서

조금씩 차감하는 방식으로

되돌려 받기를 원했고

양희승은 구단과 마찰을 겪었으나

결국 토해낸 듯 하다.

 

.

.

.

 

02. 방송에서 현영과 러브라인을 탔다

SBS 예능 "골드미스가 간다"에 나와

현영과 소개팅을 하며

커플로 엮인 바 있으며

꽤나 수위가 높은

스킨쉽도 하는 등, 화제가 된 바 있다.

 

.

.

.

 

03. 농구예능 감독으로 출연한 바 있다

농구예능 "버저비터"의

자신의 이름을 내건 팀의 감독으로 참여하여

방송에 나온 적도 있다.

 

 

 

 

 

반응형

'스포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동현 KBL 대표 쌍둥이 가드 동생 연세대 레전드 뚝심의 아이콘  (0) 2021.04.15
조상현 KBL 대표 쌍둥이 슈터 형 연세대 레전드 소리없이 강한 남자  (0) 2021.04.15
해리 케인 포체티노의 전화 그리고 레알까지 움직였다  (0) 2021.04.13
앨버트 화이트 KBL 역대 최다 트리플더블의 주인공, 다재다능의 아이콘  (0) 2021.04.13
손흥민 다이빙 인종차별 논란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이유  (0) 2021.04.13
PREV 1···36373839404142 NEXT

+ Recent posts

Powered by Tistory, Designed by wallel
Rss Feed and Twitter, Facebook, Youtube, Google+

티스토리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