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적
슈팅가드와 스몰 포워드 포지션을 가진
농구선수로
대표적인 쌍둥이 형제
농구 선수로 동생 조동현과 함께
아마추어 시절을 함께했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동생에 비해
공격력을 비롯하여 더 많은 재능을
가졌다는 평가와 함께
형만한 아우가
없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묵직한 성격답게
소리소문없이
KBL에서 많은 기록들을 꽤나 쌓아가는 등
실력에 비해 관심도나
주목도는 나름 부족했던 편.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가장 최근에는 김상식 감독 밑에서
남자 농구대표팀 코치를
수행하기도 했다.
연세대의 주포로 활약했던 시절
대전고 시절,
동생과 함께 팀을 상위권에 올려 놓으며
유망함을 인정 받았고
그 활약을 통해
연세대 입학에 성공.
1995년에는
황성인, 조우현, 이규섭, 김성철 등
기량이 좋았던 선수들과
청소년대표로
함께 활약하며
결승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하는 데
멋진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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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진학도
쌍둥이 동생 조동현과 함께 했고
서장훈이 미국 유학으로
공백이 있었으나
우지원, 김훈 등 슈터들의 선배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여주더니
2학년부터는
완벽하게 주전 포워드로 자리매김하면서
복귀한 서장훈 등
기라성 같은 자원들과 함께
연세대를 이끌며
결국 96-97 농구대잔치에서
상무를 꺾고
사상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골드뱅크 -> SK, 크리스마스 빅딜
1999년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광주 골드뱅크에 지명되며 프로 무대 진출.
1순위라는 것만으로도
그의 기대치는
엄청 높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그것도 잠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KBL 역사상 크리스마스 빅딜 트레이드로
그는 SK로 이적하게 되는데
트레이드 대상자가
무려 현주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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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에 현주엽은
포지션상 지속적으로 겹치는 모습을 보이며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당시 최인선 감독은
활약도가 좋은
조상현이 SK에 어울리겠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내린 결정.
결국 조상현은
첫 시즌 도중, 팀을 옮기게 되었고
그 곳에서도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며
평균 18,4점의
득점력을 보여주면서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자리 잡았지만
아쉽게 그 해 신인왕을
놓치고 말았다.
지금으로써는
조금 어이없는 부분이기는 한데
그 해에
리그 MVP를 같은 팀
서장훈이 수상하게 되었고
같은 팀에서
MVP와 신인왕을 받는 건 조금 아니다!라는
불문율이 작용하던 시기라
결국 좋은 성적에도
조상현은 수상에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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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왕 수상과 별개로
조상현의 능력치와 포텐은 제대로 터졌고
이듬해 20.6점의
평균 득점을 기록하는 등
존재감 폭발,
01-02 시즌에는
팀을 챔피언결정전으로 올려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까지 수행.
그 시즌을 끝으로
상무에 입대하게 되었고
2002 부산 아시안게임 대표로 뽑히며
결국 극적인 우승을 이뤘지만
당시에는 병역면제제도가
확립이 안되었던 때라
금메달 획득에도
남은 병역생활을 마쳐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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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후,
SK에 복귀했으나
에이스였던 그를 생각보다 반기지 않는
눈치가 보였고
뚝심있는 플레이를 보여주지만
화려하지않은 그를
구단에서는 결국
트레이드를 통해 부산 KTF로 이적시켜버렸다.
그 때의 이루어진
3:3 트레이드는
조상현, 황진원, 이한권이 KTF로 가고
방성윤, 김기만, 정락영이 SK로 이동하는 것이였고
조상현과 방성윤이
껴있다는 점에서
KBL 역사에 남을 큰 트레이드였고
조상현은 큰 트레이드 중심에
항상 중심에 있게 되었다.
LG 그리고 오리온에서 은퇴
트레이드 되었던
부산 KTF에서 남은 반 시즌을 뛰엇으나
FA가 된 후,
재계약을 이루어내지 못했고
결국 새로운 팀
창원 LG와 계약을 맺었다.
첫 시즌,
평균 12점의 득점을 기록하는 등
알뜰한 활약을 보였으나
06-07 시즌을
기점으로 조금씩 부진한 모습을 보였는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3점 라인이 길어지며
정확도 떨어지기 시작한 것.
결국 창원 LG에서
꾸준하게 뛰기는 했으나 활약도가 점점 더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식스맨 자원으로
분류되는 등
냉정하게 말하자면
창원LG의 조상현 FA 영입은
성공보단 실패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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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오용준과 1:1 트레이드를 통해
고양 오리온스로 이적했고
선수층 나이가
젊다는 점에서 노장 조상현은
여러가지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구단의 판단.
그리고 그 판단은
정확했고
역시 식스맨으로 분류되기는 했으나
간간히 터져주는
3점포를 바탕으로
쏠쏠하게 활약해주면서
통산 6,000득점과
3점 1,000개 돌파도 오리온스 시절에
기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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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하며 코트를 떠났고
곧장 고양 오리온스
코치로 합류하며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조상현에 대한 TMI
01. 대형 트레이드 중심에 항상 그가 있다
조상현은 선수생활을 하며
꽤나 많은 트레이드를 경험한 바 있는데
모두 굵직굵직하다.
첫 시즌, 트레이드에선
현주엽과 유니폼을 바꿔 입은 바 있으며
또 한 번 트레이드에서는
3:3 트레이드였으나
사실상 중심은
조상현과 방성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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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멀어진 3점라인의 최대 피해자 중 한 명
KBL은 3점라인을
더욱더 늘렸던 시기가 존재했고
조상현을 비롯하여 꽤나 여러 명의 선수들이
늘어난 3점라인에
고전을 하며
부진의 늪에 빠지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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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쌍둥이 농구선수
과연 누가 조상현일까?
포스팅을 하느라 조상현 관련 사진을
지속해서 보다보니
나는 어느정도 감이 오는 것 같긴한데...ㅎㅎ
두 선수 모두
아마추어 시절에는
한 팀에서 뛰면서 플레이했고
프로에 와서는
한 팀에서 뛴 적은 없는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동생에 비해 형 조상현이 조금 더
공격력이 뛰어나고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2021.04.15 - [스포츠] - 조동현 KBL 대표 쌍둥이 가드 동생 연세대 레전드 뚝심의 아이콘
조동현 KBL 대표 쌍둥이 가드 동생 연세대 레전드 뚝심의 아이콘
대한민국 국적 가드 포지션을 가진 농구선수로 형 조상현과 함께 KBL을 대표하는 쌍둥이 농구선수로 유명하다. 형에 비해 공격력이 약하고 주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수비력이 좋고 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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