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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술 매직키드 KBL 6년주기 포인트가드의 가장 최신버젼 2021.04.01

조성원 캥거루 슈터 KCC 레전드이자 KBL 레전드 슈팅가드

2021. 4. 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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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을 대표하는 레전드 슈팅가드

대한민국 국적

슈팅가드 포지션을 가진 농구선수로

전주 KCC의 레전드이자

KBL 레전드 가드로

손꼽힐 수 있는 실력과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180cm의

비교적 작은 키에도

엄청난 스피드와 환상적인 무브,

독보적인 슛 감각으로

KBL 무대를

주름 잡았고

여러 해 우승도 경험.

 

창원LG 소속으로

국내선수 중 유일하게 MVP 타이틀을

따낸 경험이 있고

현대/KCC 시절엔

이-조-추 라인으로 

전성기를 누빈 경험도 있다.

 

 

 

 

 

늦게 시작한 농구, 의리의 남자

모교 명지대 감독 시절

중3에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했으니

늦게 시작한 케이스로

설상가상으로

더이상 키가 크지않아

그를 받아주는 팀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노력과 재능이

빛을 발하며

어렵게 들어간 팀에서 주전이 되었고

강호 용산고를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따내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으며

그 경기에서

조성원은 무려 40점을 득점.

 

.

.

.

 

명문 고려대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으나

고등학교 시절,

힘든 시기에

자신을 도와주었던 동료들과 의리를 위해

함께 명지대에 입학.

 

워낙 연대/중대/고대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과 함께 팀이 승승장구하며

조성원이 이끄는

명지대가

결승진출 자체가 불가능했으나

조성원의 능력은

더욱더 부각되어 많은 프로 팀들에게

러브콜을 받게 되었고

대학 졸업과 함께

현대에 입단하게된다.

 

 

 

 

현대의 전성기, 그 중심의 조성원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알리게 된 시기

입단 초에는

확실한 주전도 아니였고

본인도 만족스럽지 못한 플레이를 보였으나

군입대 후,

상무에서 이상민과 함께

팀을 이끌며

농구대잔치에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

.

.

 

프로농구가 출범한

97-98 시즌

제대와 함께 현대의 일원이 되어서

포텐이 터진 그는

이상민, 추승균과 함께

이-조-추 라인업을 이끌었고

최고의 용병으로 꼽히는

맥도웰의 합류로

화룡점정을 찍으며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기시작.

 

빠른 스피드로

속공 상황에서 마무리 짓거나

3점포로 연결하는 등

분위기를 바꾸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으며

특히, 4쿼터에 

더욱더 강한 모습을 보여줌에 따라

" 4쿼터의 사나이 " 라는

별명도 생겼다.

 

.

.

.

 

98-99 시즌

평균 16.4점을 넣으며

챔피언결정전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본인은 MVP 수상.

 

99-00 시즌에도

서울SK에게 패하며 우승은 놓쳤으나

조성원은 개인적으로는

17.5점의

평균 득점을 기록하며

환상적인 활약.

 

그 시즌이 끝난 후,

신선우 감독은 팀 개편을 목표로 내세우며

공격적인 장점을 가졌으나

아쉬운 사이즈로

수비의 한계를 보인

조성원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하며

양희승과 1:1 트레이드되어

창원LG로

이적하게되었다.

 

 

 

 

 

창원LG 이적, 그리고 MVP

LG 공격농구의 중심이었다

창원LG로 이적하면서

김태환 감독을 만났고 조성원은

물 만난 물고기가 되어

팀의 화끈한 공격농구의 중심으로 활야한다.

팀 평균득점이

100점에 육박할 정도로

LG는 미친듯한 공격농구를 선보였고

조성원은 시즌내내

꾸준하고 폭발적인 모습으로

평균 25.7점과 함께

팀을 리그 2위까지 올리는 맹활약.

 

 그 해에

아쉽게 삼성에게 패하게 되면서

챔피언결정전

우승엔 실패했으나

조성원은 국내선수 중

독보적인 스탯과 활약을 바탕으로

시즌 MVP를 수상했고

창원 LG 구단

역사상 최초의 MVP를 탄생시켰다.

 

.

.

.

 

하지만,

문제는 창원LG와 조성원 

모두에게 존재하며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화끈한 공격농구 대비

수비력은 문제점을 보였고

역시 사이즈에

한계를 가진

조성원 수비가 구멍이 되어

상대 팀들에게는

노림수로 작용한 것.

 

결국 조성원의

개인기록도 점점 더 내려갔고

설상가상으로

출전시간도 점점 더 줄어들게 되면서

주장임에도 조성원은

팀에게 트레이드를 요구.

 

.

.

.

 

김영만과 트레이드되어

서울SK로 이적했지만 그 곳에서도

수비의 한계를 보이며

제 역할을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어느정도 겉돌았고

결국 예전

신선우 감독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전주 KCC에

입성하게 되었다.

 

조성원은 분명

빠르고 공격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자원이었으나

신장이 작고

더불어 수비의 한계를 보였다는 점에서

현대와 LG 초반 이후의

행보는 여러가지로

아쉬움이 많았으며

농구=키

어느정도 동반되어야한다는 걸

말해주기도했다.

 

 

 

 

 

 

마지막 유종의 미, 전주 KCC

은퇴식을 함께한 이상민과 추승균

전희철과 트레이드되어

전주KCC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국내 빅맨을

여러 명 영입하며

팀을 개편하려했던 신선우 감독은

계속해서 실패하자

현대 시절,

본인이 꾸렸던 모드로

팀을 다시 바꾸자는 계획과 함께

팀에 남아있던

이상민, 추승균에

조성원을 더하는 전략.

 

어느정도

전성기에 비해 폼이 떨어진 그였으나

공격력은 여전했고

03-04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17.2점의 평균득점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통해

팀에게 우승을 안겼다.

 

.

.

.

 

그 후,

폼이 더욱더 떨어지게 되면서

조성원은 점점 더

식스맨 롤로 변경이 되었고

허재 감독 부임 후에는

주전보단 조력자, 벤치 멤버로써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서

자신을 역할을 받아들이는 모습.

 

05-06 시즌 후,

조성원은 결국 현역은퇴를 선언했고

2006년 8월,

전주 KCC와 중국리그팀과의

평가전을 통해

은퇴식을 가졌다.

 

대전 현대와 전주 KCC를 포함하여

세 번의 우승을 이끌고

활약했던

레전드의 모습을 보였으나

아쉽게도 구단은

그에게 영구결번을

지정해주지는 않았다.

 

 

 

 

 

조성원에 대한 TMI

 

 

 

 

01. 스피드와 3점을 모두 가진 최고의 공격수

 

조성원의 유일한 단점이

작은 키와 그로인한 수비의 한계일 뿐,

공격적인 면에서는

KBL 레전드에

남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선수였다.

캥거류슈터라는 별명답게

탄력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득점을 기록하고

특히, 중요한 순간

고감도 3점포로 승부를 결정짓는 장면을

여러 번 연출했다.

 

.

.

.

 

02. 4쿼터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있다

 

유독 조성원은

4쿼터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러한 별명을 얻었고

큰 경기에 유달리

강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강심장이다.

 

.

.

.

 

03. 강병현의 말에 의하면 폭언이 없는 감독

 

창원LG 주장 강병현은

조성원 감독에 대해 이렇게 코멘트 했다.

" 폭언은 전~혀 없고 가장 심한 말이

임마! 일 정도다. "

그만큼 선수들을 거칠게 다루지 않고

신사적으로 대하는 듯.

(전 감독과 비교한 건 아니겠지..?)

 

.

.

.

 

04. 이상민과 호흡은 좋았으나 덜 친했다(?)

 

이-조-추 트리오는

말 그대로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며

수많은 우승을 이뤄냈는데

조성원 말에 의하면

이상민과 사석에선 친한 편이 아니었는데

경기만 치르면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이라

패스를 이곳으로 해줄꺼야~하고

보지도 않고 뛰어가면

이상민에게 패스가 전달되었다고 한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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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술 매직키드 KBL 6년주기 포인트가드의 가장 최신버젼

2021. 4. 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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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를 대표하는 정통 포인트가드

대한민국 국적

포인트가드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농구선수로

20-21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며

KBL 레전드로 남게 되었다.

 

연세대 시절,

환상적인 경기력을 통해

정통 포인트가드 최고 유망주로 평가받고

KBL 데뷔 역시

드래프트 1순위를 받으며

기대감을 모았고

신인왕을 수상하며

승승장구 할 듯한 느낌을 주었으나

그의 커리어를

전체적으로 본다면

유망주 시절의 화려했던 경력을

생각보다 이어가지는 못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KBL 6년주기

정통 포인트가드의 탄생이란 말이 있는데

강동희-이상민-김승현의

뒤를 잇는 선수가

바로 김태술이었다.

 

 

 

 

 

KBL에 오기 전까지

어찌보면 가장 화려했던 시절

동아고 시절,

이미 천재형의 선수라는 타이틀과 함께

최고의 유망주로 꼽히며

6년주기 포인트가드로

지목이 되었던 그.

 

연세대 진학을 확정짓고

입학 전, 농구대잔치에 참가해서

자신의 유망함을

제대로 보여주며

고려대를 물리치는 등

연세대가 우승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

 

.

.

.

 

선배 이정석과 함께

포인트가드를 구성하며 활약했고

방성윤, 전정규, 양희종 등

포워드진도 

빵빵했기에 연세대는 그 시절,

무서울 것이 없었고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는 

연세대 소속으로

대표팀에 선발되는 영광까지 누렸다.

 

학년이 높아지면서

선배들이 졸업하고 센터진의 부족으로

연세대의 성적은 떨어졌으나

김태술의 개인기량은

이미 넘사벽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프로데뷔의 기대감을 높였고

그는 결국 졸업 후,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되며

서울 SK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데뷔를 이룬다.

 

 

 

 

 

 

서울SK 매직키드 시절, 신인왕까지

신인왕은 받았지만, 임팩트는 부족

첫 시즌

10.7점과 7.3어시스트의 기록을 남기며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고

본인도 신인왕 수상.

 

이 해에는

양동근, 신기성, 김승현 등

KBL를 주름잡고있던

가드들이 군대, 부상 등을 이유로 자리를

비우는 시간들이 많았고

그렇기 때문에

김태술이 조금 더

돋보인다는 의견도 존재했으나

김태술은 스스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으며

그 당시에는

리딩과 어시스트 능력은 물론

스스로 득점력까지 갖추었다는 점에서

인정을 받았다.

 

.

.

.

 

서울SK를 대표하는

삼각라인으로

김태술-방성윤-김민수가 꼽혔고

구단에서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그들의 호흡을 기대하는 시선들이 많았으나

정작 각자의 부상 등으로 인해

서로 함께하는 시간들이

그닥 많지 않았고

김태술 역시

그나마 부상도 적고

꾸준하다는 평가를 받기는 했으나

임팩트가 부족했고

 

결국 서울SK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로하여

김태술을 김종학과 묶어

1:2 트레이드로

주희정과 맞바꾸는 행보를 보여주었고

신인왕까지 받았던

김태술은 짐을 싸서

안양 KT&G로 이적하게 되었다.

 

 

 

 

 

우승을 경험하다, KT&G 시절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경험하다

안양 KT&G는

미래를 준비하며 주전급 선수들을

모두 군대로 보냈고

김태술 역시

그러한 계획속에

이적하자마자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간

복무하게된다.

 

그리고

복귀 시즌이었던

11-12 시즌,

이상범 감독이 팀을 이끌면서

양희종, 김일두에

신인 오세근까지 가세하게 되면서 

안양은 튼튼한 

전력을 갖추게 되었고

 

김태술 역시

10.8득점과 4.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나름 쏠쏠한 모습으로

팀을 이끌더니

그 해 결국

팀이 챔피언결정전에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

.

.

 

그 해에

김태술은 우승과 함께

개인능력까지 인정을 받게 되면서

시즌 베스트5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고

미래를 준비하며

주희정 대신 영입한 안양 구단 측에서도

성공적인 시나리오.

 

하지만,

그 이후로의 행보는

점점 더 불규칙하고 기복이 심한 플레이와

부진이 거듭되면서

팀에게도 별반 도움이 못했고

후에 알게된 사실은

그의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리며

멘탈이 흔들렸고 결과적으로

아버지는 사망.

 

.

.

.

 

KT&G는

양희종과 김태술이 FA가 되면서

먼저 양희종에게

거액의 연봉을 안기며

김태술은 재계약이 힘들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결국 계약을 했다가

곧장 트레이드로

전주 KCC로 이적하게되었다.

 

구단 측에서도

김태술을 전력 외로 분류하는 분위기였고

김태술 역시

팀에 남는 것보다

이적을 통해

새로운 출발을 원했던 것으로

밝혀지기도했다.

 

 

 

 

 

 

먹튀의 오명, 전주 KCC시절

가장 부진했던 시기

개막전이자

김태술에겐 데뷔전이었던 경기에서

5득점 3어시스트로

부진하더니

시즌을 거듭해도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

벌써부터

먹튀소리를 듣기 시작.

 

본래 운동능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였으나

부상까지 겹치면서

기본적인 역할, 더불어 매치업 선수에 대한

수비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구멍이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어떻게 보면 자신을 믿고

영입해준

허재감독이 사퇴하며

더욱더 김태술에겐 힘든 시간들.

 

.

.

.

 

조금씩 나아지며

좋은 스탯의 경기를 치르기도 했으나

거의 손에 꼽을 수준이며

2년차였던

15-16 시즌에는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김태술이 나오면

지독히 팀이 따라잡히거나 스코어가

벌어지는 상황이 벌어지며

냉정히 말해

거의 민폐수준....

 

결국 16-17 시즌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김태술은

이현민과 트레이드되어

서울 삼성으로

이적하게 되었고

전주 KCC 팬들은 먹튀였던 김태술을

처리해준 삼성 구단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도했다.

 

 

 

 

 

반짝 제 2의 전성기, 다시 부진의 삼성 시절

폼이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삼성 데뷔 후,

전반기 시즌에는 

제 2의 전성기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절치부심한 모습.

 

올스타전에도

김선형과 함께 선발 베스트5에 

이름을 올리는 등

반전의 시즌을 거듭하는 등 기대감을 모았으나

결국 거기까지....

 

후반기 시작과 함께

김태술이 

부진할 때의 모습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경기 맥을 끊거나

리딩의 한계,

센터에게 공을 셔틀(?)하는

정도의 롤 이외에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노장 주희정과

신인급 이동엽에게

서열에 밀릴 정도로 폼이 떨어졌다.

 

.

.

.

 

주희정 은퇴와 함께

신인급 가드들을 제외하면 포인트가드가

없던 삼성은

울며 겨자먹기로

김태술을 주전으로 써야했으나

폼을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다시 한 번

중요했던 챔피언결정전에서

귀신같이 부진하며

결국 삼성은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고

김태술은 19-20 시즌을 앞두고

삼성과 재계약 마무리 후,

정희원과 트레이드로

원주DB로

이적하게 되었다.

 

 

 

 

 

 

마지막 불꽃, 원주DB

안양에서 함께했던 이상범 감독과 함께

원주DB에서

안양 시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상범 감독 밑에서

재기를 꿈꿨으나

역시나 현실은 시궁창.....

 

20-21 시즌에도

부상을 이유로 팀에 늦게 합류,

김현호의 부상과

김민구가 이적하게 되면서

가드진이 얇아지며 어느정도 출전시간을

보장받고 있으나

이렇다할 활약은 없는 편.

 

그리고

그는 결심했는 지

" 후배들의 길을 막을 수 없다 "

말을 남기고

이번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겠다 말했다.

 

그의 통산성적은

520경기 출전과 함께

7.5득점, 2.4리바운드, 4.5어시스트이다.

 

 

 

 

 

 

김태술에 대한 TMI

 

 

01. 정통 포인트가드의 계보는 이어갔다

 

시야가 뛰어나고

그에 걸맞는 패싱력도 수준급인 선수로써

전성기 시절에는

기발한 패스를 토대로

많은 기회를 창출했던 선수였다.

투맨게임에서

포인트가드가 해줄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을 모두 구현해주던 선수.

 

.

.

.

 

02. 뱅크샷이 또 하나의 무기였다

 

전성기의 김태술은

패싱과 함께 득점력도 꽤 준수한 가드였기에

10점이상의 평균득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주무기가

특유의 자리에서

뱅크샷으로

높은 성공률을 보여주었다.

 

.

.

.

 

03. 신인 때, 인기가 정말 많았다

연세대 시절에도

그는 가장 인기가 많은 선수였고

서울SK 입단 후,

방성윤과 함께

구단에서도 밀어주는 게 있었지만

그만큼 인기가 굉장히 많았다.

 

.

.

.

 

04. 대표적인 별명은 매직키드, 그외에는 스탯술

 

매직과도 같은

패스게임을 펼친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매직키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부정적인 별명으로는

스탯술이 있는데

부진한 경기력에 비해서 스탯이

좋은 편이라는 의미다.

 

.

.

.

 

05. 공익근무요원 시절, 안습의 일화가 있다

 

공익근무요원 시절,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구단의 경기를

관중석에서 관람했는데

한 팬이 다가와

그에게 매점의 위치를 물어보았고

곧 김태술을 못 알아본 것.

 

.

.

.

 

06. 예상외로 미혼이다

 

스포츠 스타들은

안정감(?)위해 결혼을 일찍 하는 편인데

김태술은 은퇴하는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아서

특이 케이스인 편.

비슷한 예로

전주 KCC의 이정현 역시

현재 미혼이다.

 

.

.

.

 

07. 농구계의 또 한 명의 건물주이다

 

농구계의

대표적인 건물주는 서장훈.

그와 더불어

김태술 역시 자신 명의로 된 건물이 있으며

어린 시절, 어렵게 자라서

반드시 성공해서

부도님을 호강시켜드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먼저 집을 사드리고

부동산에도 관심을 가져서

건물을 올렸다는?

 

.

.

.

 

08. 반말로 인성논란이 있다

대학교 시절,

같은 학년이기는 했으나

이동준과 김민수는 자신보다 나이가

각각 4살, 2살이 많은데

반말을 해서

인성 논란과 함께

그것에 의한

안티팬이 좀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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