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국적
스트라이커 포지션을 가진 축구선수로
레전드 공격수로 충분히
불릴 수 있는
실력과 커리어를 모두 지닌 선수.
페예노르트를 거쳐
아스날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으며
우승 커리어를 위해
라이벌격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나에게 맨유라고 외쳤다. "
명언(?)을 시전하며
아스날 팬들을 경악시켰고
하지만, 반 페르시는
결국 맨유로 이적하여서
그토록 원하던 우승 커리어를 쌓았다.
페예노르트에서 말썽을 일으키다
고향 유스팀에서
유망한 모습을 보이며 활약하던 그는
16세의 나이에
명문 페예노르트로
팀을 옮겨
프로 데뷔도 이루어냈다.
하지만,
경기 내외적으로
여러가지 사고를 치는 등
문제를 일으켰는데
밤문화를 즐기고
지각을 거~의 매일 하다시피 했으며
감독과 불화도 생기면서
결국 2004년
쫒기듯이
EPL 아스날로 이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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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실력적으로는
유망함을 타고났던 선수였으나
그의 사생활을 비롯한
인성적인 면에서 박한 평가를 받았던 시기로
청소년기에 방황이랄까?
아스날 스카우터는
그의 인성적인 면은 배제하고
실력적으로는
잠재적인 부분이 많다고 여겨 그를 영입했고
페예노르트 입장에서는
그를 빨리
보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는 지
당시 물가를 생각해도 굉장히 저렴한 편에
속하는 이적료로 팔아버렸는데
이적료는
단돈 2.75m 파운드였고
비교를 하자면
박주영이 AS모나코에서 아스날로 올 때
이적료가 3m였다.
방황을 거쳐 아스날 중심이 되다
아스날 이적 후,
초반에는 불같은 성격을 감추지 못하며
상대 선수들과 싸우고
사생활적으로도
강간 혐의로 기소되는 등
말썽쟁이 캐릭터.
하지만,
벵거 감독의 아빠와같은 지원과
베르감프, 앙리 등
자신이 우상시 여겼던
슈퍼스타들의 멘터링을 받으며
조금씩 안정세를 찾았고
의족이라 불리던
오른발까지 훨~씬 좋아진 킥력을 보여주는 등
득점력까지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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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시즌을 앞두고
예전 우상 베르캄프가 달았던
등번호 10번을 물려 받으며
아스날에서 에이스 역할을 인정 받은 바 있으며
아데바요르가 떠나며
사실상 공석이 되었던
주전 공격수 자리에
독보적으로 앉으며
에이스 역할을 하기 시작.
오프 더 볼
움직임이 거~의 시망급이라
경기 중에는
두각을 거의 못 나타내다가 왼발로 골을 넣으며
밥값을 했다는 평가를 받던 그가
나이가 들면서
경험을 더하고 플레이스타일이
변모하기 시작하면서
제 2의 베르캄프와 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득점은 물론
어시스트에도 눈을 뜨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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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시즌에는
파브레가스가 바르셀로나로 떠나게 되면서
주장을 맡게 되었고
그 해에
책임감을 제대로 느꼈는 지
꾸준한 득점포로
리그 전 경기 출장에 30골을 넣으며
득점왕을 차지.
반 페르시의 개인성적은
나날히 성장하는데
그에 반해 아스날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아스날 팬들은
예전 사례들을 토대로
반 페르시 역시
2년의 계약 기간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타팀으로 이적할 것을
두려워하던 찰나.....
유벤투스, 안지, 맨시티 등과
계약할 것이라는
예상기사들이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
그의 다음 행선지는
뜻밖에도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결국 그는
유명한 명언(?)을 남기며
실제로 맨유로 이적을 선택하게 되었고
아스날 팬들은
여러가지로 초 멘붕...
라이벌 맨유 이적, 그리고 끝내 우승
30이 가까운 나이에
24m 파운드의 이적료를 발생시키며
이적을 했으니
아스날 입장에서는
꽤나 짭짤한 이적료를 챙겼다고
정신승리 할 수 있겠지만
그 대상자가
에이스 반 페르시 였으니
두고두고
뒷골이 땡길 사건.
결국 첫 시즌부터
반 페르시는 맨유의 우승을 이끌어내며
통산 20번째 우승의 주역이 되었고
친정팀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득점을 올린 뒤,
세레모니를 하지 않는 등
여러가지 이슈가 될 수 있는 장면들을
만들기도 했다.
첫 해에
리그 득점왕 수상과 함께
맨유 팬들이 선정한 최고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2년 연속 EPL 올해의 팀 수상까지.
리그 38라운드에서도
득점포를 가동하며 우승 피날레와 함께
26골로 득점왕 축포를 쏘았는데
이 시즌에는
맨유가 점점 폼이
떨어지고 있는 시기였다는 점에서
반 페르시가 여러차례
하드캐리로 팀을 이끌며
우승했다는 높은 평가와 함께
그의 영입이
신의 한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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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퍼거슨 감독이 은퇴하면서
맨유는 암흑기를 동시에 맞이하게되고
반 페르시 역시
폼이 점점 더 떨어지면서
혼자 그 무게를
담당하기엔
맨유의 부진은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고
설상가상으로
부상까지 겹치게 되면서
첫 시즌 보여주었던
폼을 찾지 못하는 시기가 길어졌다.
14-15 시즌은
그가 맨유에서 뛰는
마지막 시즌이 되었고
시즌 10골을 넣으며 두자리수 득점으로
마감을 했으나
그가 가지고 있는
이름값에 비해서는 살~짝
아쉬운 모습.
폼이 떨어졌기에
그가 더이상 맨유에서 주전으로 뛰기엔
한계가 있었으나
그의 성격상
서브로써 만족을 하지 못했고
결국 맨유는
계약기간을 1년 남겨두고있는 반 페르시를
이적시키기위해
매물로 내놓았고
터키 페네르바흐체가 확 물며
이적하게 되었다.
새로운 도전, 터키리그
당시 페네르바흐체는
분노의 영입을 시전하며 거침없이 선수영입을
가던 시기였고
무려 1만5천명이 넘는
팬들 사이에서
거하게 입단식을 갖고
새출발 시작.
생각보다
출전시간의 제약을 받자
반 페르시는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며 경기 도중에
화면에 잡힌 모습은
항상 무뚝뚝...
첫 시즌,
리그에서 16골을 넣으며
클래스를 보였지만 유로파 리그에서는
1어시스트에 그치며
아쉬운 상황 속
지금의 행보라면 다른 팀으로
이적할 가능성이 높아보였지만 의외로
팀에 남았다.
여담으로
16-17 시즌
유로파 리그 조추첨을 통해
같은 조에
맨유, 페예노르트와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과거를 함께 했던
친정팀들을
상대하게 되었고
경기력은 무난무난 부진한 편.
페예노르트 복귀, 깔끔한 은퇴
2018년 1월,
겨울이적시장을 통해
프로데뷔를 가졌던 페예노르트로 복귀했고
2월에 커리어 통산 300호골을
작렬 시키더니
컵대회 결승골에서
추가골을넣으며
팀의 우승까지 이끌었다.
18-19 시즌에는
팀의 주장으로 선정되어 리더쉽을 보였고
뇌쇠화가 되어
공격수 아닌
미드필더로 나와
공수조율을 해주는 역할 담당.
그리고 그 해에
시즌이 끝나면서
자연스럽게 현역은퇴를 선언했다.
국가대표로써의 반 페르시
2005년
A대표로 처음 데뷔했고
2006 독일월드컵이 첫 메이저 대회가 되어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활약.
그 후,
메이저 대회에서는
꽤나 부진한 모습을 이어가다가
그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던 대회는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직도 회자되고있는 돌고래와도 같은
다이빙 헤딩골을 포함하여
대회에서 4골을 넣으며
팀의 3위를 이끌었고
반 페르시의 존재감은
득점 이외에도
꽤나 두드러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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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대표팀 명단에 꾸준하게 이름을 올리며
나름대로 활약했으나
네덜란드 국대가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진출에
실패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국대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A매치 102경기 50골
로빈 반 페르시에 대한 TMI
01. 뛰어난 재능, 뛰어나지못한 피지컬
반 페르시의 재능은
상상이상급이다.
퍼스트 터치가 예술이고
왼발로 터트리는 득점력은
가히 퍼펙트하며
오른발에 적응까지 완료하며
말년에는
좌우 발을 가리지 않고
훌륭한 슈팅과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다만, 그는
꾸준하게 부상을 달고 살았으며
로벤 과 함께
FC 호스피탈의 멤버로
불릴 정도로 중요한 순간마다
부상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은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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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A매치 최다득점자, 하지만..?
50골을 넣으며
네덜란드 국대 역대 A매치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결과적인
스탯만 보면
누구보다 훌륭하다고 할 수 있지만
정작 중요한 대회의
토너먼트에선
득점포가 적은 편이라
분명 훌륭한 공격수임에는 사실이 없지만
살~짝 아쉬움이 남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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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루니에게 바보취급을 당했다?!
웨인 루니는 인터뷰를 통해
맨유 동료 중,
가장 속이기 쉬운 선수로 반 페르시를 지목했으며
경기장 밖에서는
경기 중
보여주는 카리스마와 다르게
어설픈 면이
많다고 밝힌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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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반 페르시의 맨유 합류, 카카와가 피를 봤다?!
사실 퍼거슨 감독은
카가와를 맨유로 데려오면서
루니를 원톱으로 두고 그 밑에 카카와를 위치해
전술을 구상하고 있었으나
반 페르시가
극적으로 맨유에 합류하게 되면서
반 페르시가 원톱을 서고
그 밑에 루니가
위치하는 전술로 바뀌게 되었고
카가와는 자연스럽게
베스트11에서 밀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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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인도네시아계 네덜란드인이다
그의 모습이나
이름으로는 전~혀 유추가 되지않는 부분인데
인도네시아는 예전
네덜란드 식민 지배를 받았고
그 중, 반 페르시도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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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탁구실력이 수준급이다
축구 이외의
잘하는 스포츠로 탁구를 꼽은 바 있으며
실제로 탁구실력이
굉장히 좋은 편이라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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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송종국과 함께 뛰던 시절이 있었다
페예노르트 시절,
송종국과 함께 뛰었던 시절이 있었으며
송종국의 전 소속팀
부산과의 평가전을 위해
한국을 찾았던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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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영국 애기 팬을 울린 적이 있다
반 페르시가
영국무대를 떠나 터키 리그로
이적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4살짜리 영국 애기 팬이
슬퍼하는 모습이
유튜브 영상을 통해 공개가 되었고
터키 페네르바흐체 회장은
그 아이를 초대해
반 페르시와의 만남을
주선해주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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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월드컵에서 진기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월드컵에서
유일무이하게 득점에 관련하여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왼발, 오른발, 머리, 프리킥, 페널티킥으로
모두 득점을 한 것.
(왼발과 오른발은 세트피스가 아닌
경기 도중의 득점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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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부모님이 예술가이다 + 베르캄프와의 관계
반 페르시의 부모님은
모두 예술가이며
그의 아버지는 베르캄프가 은퇴할 때에
베르캄프를 모티브로한
작품을 만들어
선물한 것으로 유명하다.
반 페르시는 일찍히 베르캄프의 플레이를 보며
우상시 여기며 자라왔던 인물로
그 아버지의 예술작품을
선물로 받은
베르캄프가 굉장히
감동했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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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월드컵의 역사상에 남을 헤딩골을 넣었다
말이 필요없다.
그냥 득점 장면을 감상하면 될 듯....
이외에도 클럽에서도
꽤나 많은
원더골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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