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적
포워드 포지션을 가진 농구선수로
사마귀 슈터라는
별명과 함께
허동만 트리오의 멤버로
수많은 우승을 함께했던 선수로
스스로 득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과
힘을 가지고 있으며
수비력까지 좋은 선수라
팀에게는
더없이 좋은 자원으로 평가 받았다.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훌륭하다는 점에서
KBL를 대표하는 포워드로 평가 될 수 있으며
은퇴 후에는
감독과 코치로써
여전히 코트 위를 누비는 중.
센터였던 그, 포워드로 포지션 변경
본래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센터 포지션에서
뛰었던 그는
활약 자체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고려대 진학을
눈 앞에 두고 있었으나
계약 과정에서
동료 중, 일부만을
원했던 고려대와 달리
자신의 동료들을 모두 영입해주겠다는
중앙대로 진학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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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의 선택은
신의 한수가 되어버렸는데
바로 중앙대 진학 후,
본래 센터 포지션에서 포워드로
포지션을 바꾸면서
그의 농구인생이 바뀐 것.
이미 중앙대에는
키가 큰 센터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당시 정봉섭 감독은
김영관과 양경민에게
슈팅 연습을 수없이 시키며
슈터로써의
변신을 시도했고
두 선수는 중앙대 포워드의 중심이 되어
팀을 이끌기 시작했다.
결국 김영만은
중앙대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하며
당시 농구대잔치에서
우승은 못했으나
결코 약팀이 아닌 강팀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실업팀들의 러브콜을 받게 되었다.
허동만 트리오, 기아자동차 시절
3억의 계약금을 받고
기아자동차에 입단을 하게 되었고
사실 현대전자로
입단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으나
무언가 틀어지면서
이미 슈퍼스타들이 존재하고있는
기아 입단 성공.
아마추어 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실업에서
통할지에 대한
의문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었으나
첫 해부터
김영만은
팀의 우승과 함께
신인왕을 차지하게 되면서
의문을 지웠고
허재, 강동희, 김영만으로 이어지는
허동만 트리오의
중심이 되어
맹활약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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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점과 맞물려
여러가지 개인적인 논란을 일으켰던
허재에 대해서
최인선 감독이 의구심과 함께
기아 자체를
강동희-김영만
중심으로 나설 계획을 세웠다.
KBL리그가 창단되고
프로 원년 때,
허재가 배제된 상황에서 강동희와 김영만은
환상적인 활약을 보이며
기아의 우승을
이끌면서
프로에서도
김영만의 활약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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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하게 스몰 포워드에서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20점에 가까운
평균 득점과 함께
수비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동 포지션에
날고 기었던
추승균, 우지원, 문경은 등
좋은 기량의 선수들 역시 김영만 앞에서는
작은 존재가 되었다.
기아 -> 모비스로
팀이 바뀌는 와중에 감독 역시
최희암 감독이
새롭게 사령탑에 오르며
기존 가지고 있던 중앙대 선수들의 흔적을
지우려는 움직임이 보였고
우지원과 트레이드되어
서울SK나이츠로 이적하게 되었다.
그 후의 조금은 아쉬운 행보
서울SK에서
새로운 시작을 꿈꿨으나
슬슬 김영만에게는 하락세가 보이기도 했고
부상이 겹치게 되면서
부진을 거듭했고
팀원들과
불화설까지 생기게 되면서
출전시간이 줄었다.
결국, 그는
중앙대 출신 선수들이 많이있는
창원LG로 이적했고
강동희, 조우현 등과
호흡을 맞추며
반등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쏠쏠한 활약과 함께
어느정도 팀성적도 오르리라 기대했으나
자신을 중용했던
김태환 감독이
팀을 떠나게 되면서
그 역시도 주전에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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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가 되어
친한 강동희가 코치로 있는
원주 동부와 새로운 계약을 맺으며
변화를 주었으나
폼이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결국 시즌 도중,
정훈과 표명일이 중심이 되었던
3:3 트레이드의
1명이 되어
허재가 감독으로있는
전주 KCC로 또 다시 이적하게되었다.
허재 감독 밑에서
어느정도 부활하나 싶었으나
역시 폼은 떨어졌고
시즌 말미에
모교 중앙대학교로 코치 제의가 오게 되면서
그는 정들었던 코트를 떠나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김영만에 대한 TMI
01. KBL 역대 최고의 스몰 포워드 중 한 명
본인 스스로
득점을 만들 수 있는 기술과 힘을 가진 자원으로
1옵션으로 밀어주기만하면
시즌 평균 20점 이상은
꼬박꼬박 해줄 수 있는 선수였다.
더불어 그가
더욱더 높은 평가를 받는 건
공격력과 함께
그 이상의 수비력까지 갖췄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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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KBL 역대 1경기 최고 득점자로 남아있다
49점을 기록하며
꽤나 오랜시간동안 독보적으로
국내선수 기준,
KBL 1경기 최고 득점자로 남아있었고
김선형 역시 49점을 기록하며
두 선수가
함께 1위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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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원주동부에서 유일한 기록을 가지고있다
선수 -> 코치 -> 감독
모두 경험한 동부 출신의 농구선수 중
유일한 기록을 가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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