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적
가드, 포워드가 모두 가능했던 자원으로
역대 10회의 트리블더블을
기록하면서
지금까지도
KBL 역대 최다 트리블더블의 주인공으로
남아있는 선수이다.
리카르도 포웰과 함께
전자랜드 역대 최고의 용병으로
꼽히고 있으며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 등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유형의 선수로
04-05 시즌,
자유계약제도로
KBL 용병제도가 바뀌었음에도
재계약에 성공한
3인 중 한명이다.
KBL에 오기 전까지
이미 고교 시절,
미국을 대표하는
전국구 유망주로 평가 받았고
졸업반 때에는
미국 청소년대표팀에도
선발되는 영광.
맥도널드 올어메리칸에 선발되어
케빈 가넷, 빈스 카터,
폴 피어스, 천시 빌럽스 등
NBA에서
한 획을 그은
선수들과 함께 팀을 이루며
자신의 유망함을
보여주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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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 대학교에 진학하여
1학년 시절부터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보여주면서
주전으로 활약했고
다만, NCAA 토너먼트에서
1회전에서 아쉽게 탈락을 하게 되면서
슬픔과 함께
2학년 때 감독과 불화로
결국 한 시즌 통째로 출전금지라는
중징계를 받게 되면서
미주리 대학교로
전학을 선택.
새로운 곳에서
역시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팀은 토너먼트에서
다시 빠르게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3학년을 마친 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얼리 엔트리도
NBA 드래프트 나서게 되었으나
1999년 NBA 신인 드래프트는 수많은 스타들이
등장한 시기가 되었고
결국 지명 되지못하면서
하부리그로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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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부리그에서
꽤나 좋은 활약을 보이며
주가를 끌어 올렸으나
NBA 무대는 한계가 있었고
2003년 KBL 용병 트라이아웃에 지원하게 되면서
전체 2순위로
전자랜드의 선택을 받으며
KBL로 건너오게 되었다.
전자랜드 최고의 용병이 되기까지
성적이 고만고만했던 전자랜드는
제이슨 윌리엄스와 함께
화이트를 새롭게 영입하면서 전력을 다졌고
두 용병의 활약과
주포 문경은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줌에 따라
03-04 시즌,
리그 4위의 호성적을 내었으며
앨버트 화이트는
시즌 전경기에 부상없이 출전하며
26.2점, 8.8리바운드, 7.5어시스트의 기록으로
득점 전체 2위와 함께
포워드임에도
전체 3위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다재다능의 아이콘으로
우뚝 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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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을 대표하는
포인트 포워드로 명성을 날렸고
02-03 시즌에는
KBL에서는 지금까지도
보기 힘든 기록인
한 시즌 8번의 트리블 더블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하더니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는
18점 19리바운드 19어시스트를 기록하며
20-20-20 클럽까지
가능한 놀라운 수치를 보였다.
그 해에
화이트는 득점, 어시스트 등
북치고 장구치고
혼자 엄청난 활약을 보여줌에 따라
당시 기준으로
인천 프랜차이즈팀
사상 최초로 팀의 4강 진출을 이끄는 데
주인공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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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학 감독이 떠난 후,
박수교 감독이 새롭게 부임하게 되었고
화이트는 재계약에 성공했으나
화이트의 개인기록과 달리
팀 성적은
점점 더 떨어졌고
후에 외국인 험프리스 감독까지 왔으나
전자랜드는 한계를 느꼈고
다시 한 번
재계약에 성공했던
화이트가 시즌 초, 장기부상으로
팀을 이탈하더니
복귀해서도
예전만큼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자
4라운드 도중,
퇴출 당하고 말았다.
재기를 꿈꾸며, 원주 동부행
06-07 시즌이
시작되면서 처음 영입했던 용병이
부진을 거듭하자
동부 전장친 감독은
대체 용병으로
앨버트 화이트 영입을 이루어냈고
득점자원의 역할과 함께
당시 부족했던
동부의 가드진 역할까지
화이트에게 기대하는 바가 컸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화이트의 폼은 너무 떨어져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리그에는
피트 마이클, 단테 존스, 민렌드 등
더욱더 능력치 좋은
용병들이
자리를 잡던 시절이라
화이트의 플레이는 한계를 보였고
결국 4라운드 도중
화이트는 다시 한 번
퇴출 당하며
팀을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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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화이트는 KBL 무대에 복귀하지 못했고
미국으로 돌아가 뛰다가
베네수엘라, 캐나다, 이탈리아 등
다양한 리그에서
활약하다가
소리소문없이 은퇴했다.
여담으로
베네수엘라 리그 시절에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돋보이는 활약을 보인 바 있다.
앨버트 화이트에 대한 TMI
01. 미시간대학 스캔들 주인공으로 지목된 바 있다
미시간대학이
유망한 선수들을 자신들의 대학으로
데려오기위해 금품을
지급했다는
스캔들이 터진 적이 있으며
당시 해당되었던 선수 중 한명으로
앨버트 화이트도 포함.
크리스 웨버, 로버트 트레일러 등이 거론되었으니
당시 화이트 역시
최고의 유망주였던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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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KBL 용병 자유계약제도를 이겨낸 용병
자유계약제도로
용병 영입이 바뀌게 되면서
더욱더 실력있는 선수들을 영입할 기회가 생긴 구단들은
기존에 있던 용병들과 이별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는데
실력을 인정받은
앨버트 화이트는 다음 시즌에도
살아남았는데
불과 3명만 살아남았으니
폼이 좋았을 때, 화이트는 대단한 선수.
3명의 이름은
민렌드, 바셋, 그리고 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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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미국 청소년대표 출신이다
가장 우측의 아래에 위치한
12번의 화이트.
당시 대표팀에는 스테판 마버리, 샤립 압둘라힘 등
NBA를 주름 잡았던
선수들도 함께한 걸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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