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신
포워드 포지션의 농구선수로
현재 기준,
KBL 역대 최장수 용병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KBL 외국인용병 최다득점자는 물론
KBL 통틀어도 역대 2위의
기록을 가진 선수이다.
(여담으로 1위는 서설렙 서장훈)
SK 시절,
문경은 감독의 헤인즈 사랑으로
감독은 문애런이란
별명을 얻었고
에런 헤인즈는 그러한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듯
SK의 중심으로 활약했다.
문경은 감독이 왜 그토록 헤인즈를
사랑했는 지는 기록으로
말해주는 부분인데
그가 있을 때에만 플레이오프 무대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
KBL 데뷔팀은 서울 삼성
한국에 오기 전,
핀란드와 레바논 등 다양한 나라에서
용병으로써 활약한 바 있다.
특히 레바논에서는
활약도가 좋아서
주목을 받는 선수였던 경력이 있으며
그러던 중,
08-09 시즌 서울 삼성은
에반 블락이
너무나도 부진하자 그를 과감히 퇴출하고
새로운 대체용병으로
애런 헤인즈를
영입하게 되면서
애런 헤인즈와 KBL의 인연은
시작된다.
.
.
.
키도 199cm이니
특히 용병의 신장을 중요시 여기는
KBL에서
성공할 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몸도 마르고 운동 능력 자체도
평범한 수준이라
기대하는 팬들이 적었는데
역시 BQ가 뛰어난
선수답게
곧장 한국농구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활약도를 높였다.
레더, 헤인즈가
용병으로써 좋은 활약을 보이며
서울 삼성 역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4강 PO에서 1위였던
모비스를 누르며
챔피언결정전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으나
결국 결승에서 패하며 준우승했고
좋은 활약에도
신장과 웨이트에서
아쉬움을 보였던
헤인즈는 삼성과 이별하게된다.
우승을 경험하다, 울산 모비스 시절
한국을 잠시 떠났던 헤인즈는
이번에는 유재학 감독의
부름으로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부진했던 모비스 용병 쿠소를
퇴출하고 새롭게
영입한 대체용병이었는데
모비스에는 던스턴이라는 1옵션 용병이
존재하기 때문에
2옵션으로 출전시간은
적은 편이었으나
나올 때마다 알토란 같은 활약으로
모비스에 녹아들었다.
출전시간이 15분대로 적은데
평균 득점은
12점이 넘는 스탯이니
확실히 고효율 농구를 보여주었고
결국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과 같은
큰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통해
모비스 우승의 일원으로
충분히 활약했다.
친정팀 삼성 컴백, 클라쓰있는 활약
이 시절에는
이승준과 함께 호흡을 맞춘 시기로
헤인즈는 더욱더 한국농구에 눈을 뜨게 되면서
출전시간도 길어짐과 동시에
활약도가 좋아지며
KBL 득점왕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삼성은 핵심가드 이상민이 은퇴하고
전체적으로 국내선수들이
부진한 시즌이 되며
헤인즈의 득점왕 활약해도
팀성적은 부진했고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에
턱걸이 했으나
3전 전패를 당하게 되면서
빠르게 시즌을 마무리.
또 다시 대체용병, 창원LG행
KBL 외국인 용병
1인 자유계약제도로
바뀌게 됨에 따라
사이즈가 애매했던 헤인즈는
다시 한 번
KBL 재계약에 실패했으나
대체용병이 되어서
여김없이 한국행으로 돌아오게된다.
오예데지의
대체용병으로 창원LG 소속이 되었고
서장훈, 문태영 등
이름값 있는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역시 농구를 영리하게 하는 선수답게
빠르게 녹아들었다.
하지만,
서장훈이 부상으로 빠지고
호흡이 나쁘지 않았던
문태영과 헤인즈는
서로 온 더 볼 플레이어라는 점에서
욕심을 부리다가
경기를 망치는 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결국 좋은 멤버들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시즌 7위로 마감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문애런이 탄생하다, 서울SK행
12-13 시즌에는
대체용병이 아닌 1라운드 5순위로
뽑혀서 서울SK 일원이 되었다.
일단, 한국농구에도
어느정도 짬빠가 되는 헤인즈는
플레이 스타일을
너무나도 영리하게 가져가며
반칙을 유도하고 쏠쏠히 득점을 올리면서
서울SK가 상위권으로
성적을 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패하면서 우승반지를 끼진 못했으나
문경은 감독은
중요한 순간마다
애런을 찾으며
" 문애런 " 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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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SK 시절,
전주KCC 초특급 유망주였던
김민구를 공이 없는 상황에서 일부로
거칠게 밀면서
비신사적인 플레이로
한국 농구 팬들에게 거세게 욕을
먹으며 비난 받았다.
그후에도
김강선과의 충돌과정에서
다시 한번 불필요한 행동을 보이며
경고조치를 먹었고
경기 외적으로
헤인즈의 아내도 영리하지못한 대처로
헤인즈와 그 가족들이
모두 비난의 대상.
결국 헤인즈는
서울SK에서 어찌보면 KBL 무대에서
자신이 최대 주역이 되어
활약했던 곳이었으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하지 못하면서
조금은 씁쓸하게
팀을 떠나게 되었다.
오리온스 우승의 주역이 되다
외국인 용병제도가
이번에는 장/단신 제도로 바뀜에 따라
장신에 속하지만
빅맨은 아니었던
헤인즈 영입여부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으나
과감하게 추일승 감독이
헤인즈를 선택했다.
8시즌 연속
KBL 무대를 밟게 되면서
7시즌으로 최장수 기록을 가지고 있던
맥도웰의 기록을 깼다.
헤인즈는 한층 더
여문 활약을 보여주면서도
득점 감각은 더욱더 좋아져서 득점을
기본적으로 책임지고
팀의 공격까지 전술적으로
이끄는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추일승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앞에
결국 오리온스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끌어내며
울산 모비스 시절에 이어
본인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우승반지를
거머쥐게 되었다.
문애런과 다시 재회하다, 서울SK 두 번째
몸상태가
이미 말그대로 고장난 상태였으나
그럼에도 구단은
애런 헤인즈를 영입했다.
그리고 역시나
헤인즈는 영리하게 농구했고
해줘야할 때
해주는 선수가 되어
서울SK의 신명나는 농구를 이끌었고
휘청하기도 했으나
시즌 막판 6연승을 달리며
최종 2위로 마감.
하지만,
애석하게도 헤인즈는
시즌을 마친 후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하게 되면서
플레이오프 출전이
불가능해졌고 결국 그를 대신하여
대체 용병이 투입되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서울SK는 이 시즌 챔피언이 되면서
문애런, 아니 문경은 감독의
첫우승이 이루어졌고
결과적으로 헤인즈는 SK의 우승 멤버가
될 수 없기에
정식적으로 우승반지를
받을 수 없으나
구단에서 따로 마련해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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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부상 빈도가 높아져서 위험도가 있으나
2옵션 용병으로써
한국농구를 너무나도 잘알고
꾸준하게 해주기 때문에
서울SK는 헤인즈와의 동행을 이어간다.
역시나, 부상으로
팀을 이탈하는 시기가 있었으나
귀신같이 돌아와
가장 꾸준하게 활약해주고
특히, 19-20 시즌부터
서울SK에 합류한 자밀 워니의 멘토링
역할까지 잘해준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속해서 팀에 남았다.
시즌 후,
자밀 워니와 재계약하고
한 명의 용병을 닉 미랄네스를 선택하며
결국 헤인즈는
서울SK와 이별하게 되었고
만 40세가 넘은
나이로 보아서는
더이상 KBL에서 뛸 수 없으며
은퇴를 바라볼 것이라
예상하는 팬들이 많았으나....
귀신같이 돌아온 헤인즈, KCC 합류
미국으로 돌아갔던
헤인즈가 2021년 2월, 한국에서
몸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기사로 나왔다.
버논 맥클린을
대신할 용병으로 헤인즈를 고려했던
울산 모비스는 결국
자체 테스트를 했으나
헤인즈의 몸 상태가 확실치않고
맥클린이 생각보다
수비적인 면에서 잘해주자
결국 그의 영입을 포기하게 되면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할 상황에 놓였으나
이번에는 오리온스가
헤인즈에게 접근했다는 새로운 소식이
다시 전해지면서
고양으로 가는 듯(?) 했으나
이번에도 구단 측에서
계약을 철회하며
다시 낙동강 오리알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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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놀랍게도
헤인즈는 전주KCC와 계약하게 되는데
팀을 이끌던
1옵션 타일러 데이비스가
몸이 아프다며
치료를 미국에서 받고 싶다는 핑계로
떠나게 되면서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된 것.
그리고, 리그 1위를
확정 지은 전주KCC의 일원이 되어
쏠쏠하게 활약했고
자신의 KBL 커리어에
정규리그 우승을 추가하게 되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라건아가 거의 출전시간을
가져가는 상황이라
출전 자체가 극히 적었고
결국 설린저 교수의 마법과 같은 활약에
챔피언결정전에서 전주KCC는
완패하고 말았다.
애런 헤인즈에 대한 TMI
01. KBL 용병 역대 최다 출전자이다
08-09 시즌을 시작으로
20-21 시즌까지 13년을 꾸준하게
KBL에서 뛰었던 용병으로
역대 최다 출전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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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문경은 감독의 최애 용병선수이다
문애런이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것은 절대 아니다.
문경은 감독은 용병으로 헤인즈를 선택했고
헤인즈는 문경은 감독이 이끄는
서울SK 농구의
중심이 되어 활약했고
그가 있을 때에만
SK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니
문경은 감독에게
애런 헤인즈는 너무나도
귀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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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서울SK 프랜차이즈 용병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의 KBL 커리어에서
절반 이상을 서울SK 소속으로 뛴 바 있으며
함께 할 수 없었지만
결국 팀은 우승했고
꾸준하게 팀의 상위권 성적에
절대적인 존재는
애런 헤인즈의 활약이었다.
그가 21-22 시즌에도
KBL에서 현역선수로 뛸지 미지수이지만
만약 은퇴하게 된다면
아마도 KBL에서
용병으로는 최초로
영구결번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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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KBL 역대 통산득점 2위이다
KBL 역사에서
애런 헤인즈는 통산득점 2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고
이 기록은 얼마나 헤인즈가 꾸준한 활약을 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수치이다.
여담으로 통산 득점 1위는 서장훈이고
헤인즈 뒤에는
추승균과 김주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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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숀 리빙스턴과 정말 닮았다
골든 스테이트에서
커리, 탐슨 등과 우승을 함께 경험했던
NBA 숀 리빙스턴과 헤인즈는
굉장히 닮았다.
외모나 체구도 비슷하고
미들슛을 즐겨쏘는 플레이 스타일도
흡사한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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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챔피언결정전 관련 진기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애런 헤인즈는
총 4번의 챔피언결정전을 경험했으며
각기 모두 다른 팀에 소속되어
뛰었다는 기록을
유일하게 가지고 있다.
3번의 각기 다른팀으로 파이널 무대를
누볐던 선수로는
표명일과 김태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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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한국 귀화에 큰 관심을 보였었다
라건아가 한국귀화를 통해
국가대표에 합류 하기 전, 일전에
애런 헤인즈 역시
한국 귀화를 통해
한국 농구 국가대표를 꿈꿨던 선수였다.
다만, 한국농구연맹에서
제대로 알아보지않고
추친하게 되면서 결국 물거품이 되었고
애런 헤인즈에게도 상처를 주었다.
여담으로 애런 이외에도
찰스 로드 역시
한국 귀화에 관심을 보였던
용병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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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정재홍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보이다
함께 서울SK에서 뛰었던
정재홍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자
애런 헤인즈 역시
장례식장에 참석했고
눈물을 보이는 모습이 찍혔다.
정재홍은 워낙 마당발이여서 용병선수들에게도
서스름없이 다가가는 스타일로
애런 헤인즈와도
각별한 사이였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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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호불호가 갈리는 선수이다
애런 헤인즈는
농구를 너무 잘알고 하는 선수이며
BQ가 높고
특히 한국농구를
오랫동안 경험하면서
어찌보면 심판을 이용하는 플레이까지
하다보니 상대편 선수, 팬들에겐
얄미운 선수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플레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좋아하지만
그만큼 안티팬도 많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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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BQ로 KBL에서 성공한 용병
위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애런 헤인즈는 용병의 웨이트로써는
전~혀 메리트가 없다.
다만, 부족한 신체를
영리한 BQ로
커버했으며 타리그와는 다른
KBL만의 스타일에
제대로 적응하며
롱런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개인 실력은 좋지만
KBL의 팀농구를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고
한국을 떠난 용병들이
굉장히 많았던 것을 본다면
애런 헤인즈는
정말 BQ 자체가 좋은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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