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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

스웨덴 국적

스트라이커를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축구선수로 호날두와 메시로

나뉘는 시대에서

그 뒤에서

가장 위력적인 공격수로 평가받는

이미 사실상 월드클래스.

 

195cm의

큰 신장에도 화려한 발재간을 비롯하여

득점력은 물론이고

플레이메이킹까지 되는 

사기 유닛으로

그가 가는 팀은

항상 우승후보로 꼽히고

실제로 대부분 우승을 차지했다.

 

근자감이라는

말이 있는데

즐라탄은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자신의 허세 섞인 말이

결코 허세가 아닌

실제 실력이라는 것

입증한 선수이다.

 

1981년생으로

올해 한국나이로 41살인데

아직도 쌩쌩하게 현역으로 뛰는 중.

 

 

 

 

 

아스날 입단 포기 -> 아약스 폭풍성장

아약스 시절을 함께했던 반 더 바르트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은 위장 결혼과 함께 이혼했고

아버지와 컸으나

케어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

혼자 있는 시간들

굉장히 많았고

거친 성격은 이 때에

확립(?) 되었다고 봐도 무방한 듯.

 

축구의 재능을 보이며

1999년 스웨덴 자국 말뫼 FF에 입단했고

굉장히 어린 나이였으나

월등한 기량으로

2부에 있던 팀을

1부리그로 승격시켰다.

 

그 때의 활약으로

당시 EPL에서도 최고 강팀이었던

아스날 벵거 감독이

러브콜을 보내며

입단 99.999% 확정 지었는데

즐라탄은 벵거 감독이

자신을 자꾸 믿지 않고 테스트 하려는 

느낌을 주자

입단을 포기해버리는

돌발 행동 시전.

그리고 그는 아약스로 이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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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 불과하지만

그 당시 스웨덴 리그 역사상

최고 이적료

발생 시키며

아약스로 이적을 확정했고

 

등번호 9번과 함께

큰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으나

첫 시즌엔은 단 6골에 그치는 부진을 겪으며

의구심을 주었지만

이듬해 곧장 적응과 함께

공식경기에서 21골을 기록하면서

제대로 날아오른다.

 

그의 활약은

세리에A 빅클럽들 눈에 들어가

러브콜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즐라탄 본인도

큰 무대에 대한 욕심

더불어서 아약스의 구단 운영 방식,

그리고 연봉에 대한

불만

새로운 도전을 생각하게된다.

 

나아가, 아약스의

최고 유망주인 네덜란드 출신의

반 더 바르트와

마찰을 겪으며 사이가 안좋은 상황 속에서

연습 도중, 그를 부상 시키는

태클을 가하게되고

자국 언론들이

즐라탄을 맹비난하고 나서자

성질머리를 참지 못하고

결국 이적을 선언,

세리에A 유벤투스로 떠나게 되었다.

 

 

 

 

 

세리에A의 남자 즐라탄

유벤투스, 인터밀란에서 뛰었던 시절

당시 세리에A는

리그 최고로 평가받던 수준이었고

수많은 슈퍼스타들 역시

이탈리아에서

뛰던 시절이었다.

 

유벤투스에는

델 피에로와 트레제게가 있기 때문에

즐라탄은 3옵션 공격수

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부상과 부진 등

카펠로 감독과 불화까지 겪으며

델 피에로가 빠지고

그 자리에 즐라탄이 섰다.

 

첫 시즌,

리그에서만 16골을 넣는 등

그 해에 올해의 세리에A 외국인 선수상

수상하면서 연착륙했고

이 시기에

독불장군 카펠로 감독과

호흡이 잘 맞아

본인의 체중을 20kg 늘리면서

지금과 같은 

벌크업의 몸을 가지게 되면서

더욱더 무서운 공격수로 거듭났다.

 

결국 리그 우승까지

거머쥐게 되는데

이 시즌은

유명한 유벤투스 승부조작사건으로

리그 우승 취소와 함께

팀은 세리에B

강등 되었고

즐라탄은 팀에 남지않고

인터밀란으로 이적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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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밀란 이적 과정에서

본래 AC밀란이 그에게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냈으나

리그에서 17년간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는

인터밀란을 보고

 

" 내가 가서 우승을 시켜 주겠다. "

 

자신감과 함께

도전 의지를 불러 일으키며

인터밀란을 선택했다.

 

그리고 즐라탄은

약속을 지키며 아스날에서 이적한

비에이라와 함께

팀을 이끌며

인터밀란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최고의 선수가 된다.

이듬해에도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되면서

리그 2연패를 누렸으나

챔스에서는 광탈하자

인터밀란은 무리뉴 감독을 데려오면서

즐라탄과 무리뉴 감독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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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알다시피

성깔머리하면 빼놓을 수 없는

무리뉴 감독과 즐라탄이

과연 융화가 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으나

무리뉴 감독의

밀당(?) 전략을 통해

즐라탄은 더욱더 승부욕이

자극하게 되면서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시작했고

결국 리그 3연패 달성.

 

하지만,

챔스에서는 다시 한 번

이른 시간에 탈락을 맛보게 되면서

즐라탄은

챔스 우승 트로피에 대한

갈망을 참지 못했고

결국 구단주에게 직접 이적을 요청했고

역대급 스왑딜이 완성된다.

 

즐라탄이 바르셀로나 이적하고

에투+현금으로

인터밀란으로 가는

계약이 성립된 것.

 

여담으로

바르셀로나로 떠나는 즐라탄에게

무리뉴는 이러한 말

남기게 되는데

 

" 정말 바르셀로나로 가는거야?

근데 어쩌냐~ 다음 시즌 챔스 우승은

인터밀란이 할텐데? "

 

그리고 거짓말처럼

다음 시즌, 인터밀란은 챔스우승은 물론

세리에A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트레블을 달성한다.

 

 

 

 

 

실패로 돌아간 바르셀로나 시절

결국 하나가 되지못한 즐라탄과 메시

시작은 좋았다.

중앙 공격수로 나서며

꾸준하게 득점을 올렸고 팀의 승리를

안겨주었으며

메시와의 호흡

괜찮다고 여겨지는 편.

 

다만, 메시가

중앙에서 뛰고싶다는 의견을 내며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메시를 중앙에 두고

즐라탄은 윙으로 빼는 전술을 쓰기 시작했고

메시의 포텐이 더욱더 터지며

바르셀로나는 승승장구.

 

그와 맞물려

즐라탄은 부진을 겪기 시작했고

쉬운 득점 찬스를

놓치는 등

어려움을 맞이하게 되는데

더욱더 문제는

본인도 포지션을 윙이 아닌 중앙에서

뛰고 싶다고 표력했지만

펩이 무시한 것.

 

여기서 무시라는 건

즐라탄 말에 의하면 정말 6개월동안

말 한마디

섞지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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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즐라탄은

한 시즌간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뛰다가

AC밀란으로 

이적을 하게 되었고

공식 경기 스탯은

45경기 21골 11어시스트

나쁘지 않았으나

그가 다른 곳에서 보여주었던 에이스 롤

바르셀로나에선 메시가

담당하게 되면서

조력자(?) 역할

그쳐야한다는 점에서

만족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더불어, 문제가 생기면

대화를 통해 그 자리에서 풀어야하는

즐라탄 성격과 달리

최대한 직접적인 논쟁을 피하는

펩 감독과의

오해가 쌓이게 되면서

둘 사이는 

원수와도 같은 사이가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즐라탄은 메시에게 포지션이나

에이스 롤에서 밀려

팀을 떠나는 상황이 되었고

둘 사이도 

멀어지기 마련인데

흘러가는 것을 보면 둘 사이는 현재까지도

굉장히 좋은 편이고

같이 뛸 때에도

메시가 PK를 즐라탄에 양보하는 등

둘 사이에는

문제가 없어보인다.

 

 

 

 

 

다시 세리에A로, AC밀란 시절

그가 가면 팀이 우승한다

03-04 시즌 이후,

리그 우승이 없는 AC밀란에게

우승 제조기

즐라탄의 합류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고

그리고 그는 실제로

이적 첫 시즌에

AC밀란의 리그 우승을 이끈다.

 

기존에는

좋은 피지컬에도

발재간으로 재미를 보는 스타일이었다면

AC밀란으로 와서는

피지컬을

이용한 플레이를 즐기며

한층 더 스타일이

무르익어다는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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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스스로도

AC밀란에서의 생활이 좋았는지

현재까지도 그 때를

최고의 시즌이자

터닝포인트 시즌으로 꼽고 있으며

정말 그 말이 맞는 게

최고의 선수였으나

바르셀로나에서 실패와 암흑기를 거쳤는데

AC밀란 이적으로

다시 반등하고

팀도 우승하면서

즐라탄이 선수 커리어를

길게 이어갈 수 있는

기점을 마련했다.

 

파투, 호비뉴 등

실력은 좋지만 아직 덜 성숙한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멘토 역할까지 해내며

팀을 이끌었으나

결과적으로 즐라탄은

빅이어를 들어올리지 못하는

갈증을 풀지 못했고

그럼에도 나이도 있으니

AC밀란에서

뛰다가 은퇴하겠지~ 싶었으나

놀랍게도 다시 이적했다.

 

프랑스 신홍 강호

PSG로 이적이 결정되었고

AC밀란의 수비의 중심을 잡아주는

티아고 실바와의

동반 이적.

 

두 선수를 영입하며

PSG는 6200만유로의 이적료를 쏟았고

두 선수에게

엄청난 주급까지 안겼다.

 

 

 

 

 

파리의 왕, 리그앙까지 씹어먹다

리그앙에서 그를 막을 사람이 없었다

리그앙에서

즐라탄의 존재감, 실력

독보적이고 너무나도 뛰어났다.

지금까지

타 리그에서 보여주었던

능력에 경험까지 더해져 모든 것이

폭발한 시기.

 

첫 시즌,

리그에서 30골을 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했고

챔스 우승은 못했으나 꾸준한 활약으로

2013년 피파 시상식에서

푸스카스상, 월드 베스트 11

이름을 올리며

최고의 자리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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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식경기에서

41골을 넣으며 득점력을 폭발 시켰고

30대 중반으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플레이메이킹과

온 더 볼 플레이를 최대한 줄이고

본인의 피지컬을 활용하고

간결한 슈팅으로

재미를 보는 등

플레이 스타일에 변화를 준 것이

제대로 주요했다.

 

15-16 시즌,

51경기 55골이라는

경기당 1골이 넘는 수준의 스탯을

기록하는 등

PSG 역사상 최다골

경신하면서

나이를 잊은 듯한 활약을 보였고

이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날 것으로 보여진다.

 

결국 그는

PSG를 떠나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놀랍게도 차후 행선지는

맨유였다.

 

 

 

 

 

 

맨유에서 무리뉴와 재회하다

맨유에서도 우승 커리어를 추가한다

16-17 시즌을 앞두고

30대 중반의 노장 즐라탄의 행선지가

맨유라는 점에서

굉장히 신선했고

인터밀란에서 궁합이 좋았던

무리뉴 감독과의

재회라는 점에서 이슈를 끌었다.

 

1+1 형태로 계약했고

프리 시즌에도 득점력을 보여주더니

레스터 시티와의

FA 커뮤니티 실드에서

호흡이 안맞는 모습을 보이다가

결승골을 넣으며

팀에게 우승을 안겼다.

 

그리고 이어지는

EPL 데뷔전에서도 추가골을 넣으며

가는 곳마다

데뷔전에서 득점을 하는

진풍경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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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즐라탄이 전성기 때 보여주던 모습을

기대할 순 없지만

클래스가 있기에

쏠쏠히 득점도 올려주는

밥값을 하고있다.

 

유로파 리그에서도

꾸준하게 득점을 올려주는 등

스쿼드나 경기력이

많이 무뎌진

맨유에서 오히려

에이스 역할까지 해주는 모습.

 

결국 폼이 돌아오며

EPL 12월의 선수상까지 수상할 정도니

정말 나이를 잊은

최고의 활약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리그에서

15번째 골을 기록하면서

시즌 득점 2위로 올라섰고 공식대회에서

총 20골을 넣으며

10시즌 연속 20골이상 넣는

또 하나의 기록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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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폼이 좋았던 

즐라탄이 승승장구 할 것 같았던 순간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실제로 발목 부상이었고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보아

정밀진단을 통해

시즌아웃 판정을 받았다.

맨유에서

에이스 역할을 하던 찰나에

너무나도 아까운...

 

즐라탄은 빠졌지만

이해에 맨유는 무리뉴 감독이 이끌며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즐라탄 역시

우승을 함께하며

본인 개인에게는 유럽대항전

첫 트로피였다.

 

첫 시즌,

48경기 28골 9어시스트

부상만 아니였다면

더욱더 좋았겠지만

나이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좋은 활약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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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약이 발동되어

맨유와 1년 연장계약을 맺었고

간지나는 등번호 10번을 배정받게 되었다.

루니가 떠나면서

10번이 공석이었는데

즐라탄이 찰떡.

 

이 시즌에는

부상의 여파로 부진함이 이어졌고

실제로 시즌내내

위력이 가장 떨어진

모습을 보인 시기가 되었다.

그래서 일부 언론은

부상당한 늙은 즐라탄과의 재계약은

맨유에겐 실패한 계약이라

비난하기도했다.

 

그리고 3월,

조금은 이른 시기에 맨유는

즐라탄과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이별한다

공식 발표를 했고

즐라탄은 추후 행선지는

이미 여러 기사를 통해

예측 되었던

미국 LA 갤럭시가 되었다.

 

 

 

 

 

괜히 갔나? 미국 진출 후, 클래스

미국 진출을 후회하기도했다

즐라탄답게

LA갤럭시 데뷔골 역시

데뷔전에서 넣었고 동점골과 역전골

극적인 활약을 했다.

 

그리고, 조금

부진한 시기를 보내기도 했는데

역시나 적응문제였고

첫 시즌,

16경기 15골 6어시스트를 기록하더니

최종적으로

27경기 22골 10어시스트

시즌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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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해에

웨인 루니를 제치고

시즌 신인왕에 이름을 올렸는데

후에 인터뷰를 통해

미국 진출을

후회한다고 발언한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생활은 만족하지만

아직까지 경쟁력이 충분히 있어

더 큰 무대에서

뛰어도 될 시간들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2019 시즌에도

31경기 31골 8어시스트라는

괴물같은 스탯으로

에이스 역할을 했고

시즌 후,

좋은 기억이 있는 AC밀란으로 돌아간다

밝히며 팀을 떠났다.

 

 

 

 

 

밀란으로 다시 돌아온 세리에A 왕

AC밀란과 궁합이 좋은 듯 하다

2019년 겨울이적시장을 통해

AC밀란으로

복귀했다.

무려 8년만에 복귀.

 

리그 경기에서

복귀골을 신고했고 이 골을 통해

90년대, 00년대, 10년대, 20년대

모두 득점한 선수가 되었다.

이 기록은

전세계적으로 4명만 가지고 있는 기록인데

그 중 한명이 이동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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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로

시즌이 중단 될 때에는

바이러스는 개나 줘버려 식으로 

상남자 발언을 하더니

한화로 약 2억원의 기부를 하는 등

시원한 모습을

보여주기도했다.

다시 재개된 시즌에서

결국 꾸준한 득점으로 리그에서

두자리수 득점과 함께

1년 더 연장계약을 했다.

 

20-21 시즌에도

AC밀란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

강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중.

한국 나이로

40살이 넘었음에도

여전한 경쟁력을 보여주는데

그의 은퇴 시점은

가히 상상할 수 없다.

 

20골의 가까운

득점행진을 펼쳐주는 등

세리에A에서 한동안 명함을 못내밀었던

밀란은 즐라탄의 합류로

다시 반등했고

구단은 그것과 맞물려

즐라탄에게 1년 더 연장계약

체결하게 되면서

21-22 시즌에도 즐라탄은

AC밀란에서 

뛸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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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세계적인 선수답게

프로생활 커리어의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국가대표 커리어

즐라탄의 TMI 내용들

추가적인 컨텐츠로

다루어야겠다 :)

 

 

2021.06.29 - [스포츠]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국대 커리어 및 흥미로운 TMI 모음!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국대 커리어 및 흥미로운 TMI 모음!

보스니아 국적의 아버지와 크로아티아 국적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즐라탄은 세 곳의 나라에서 모두 국대에 권유를 받았으나 결국 본인의 선택은 자신이 나고 자랐던 스웨덴이었다.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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