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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대표하는 식스맨 포인트가드

대한민국 국적

포인트가드 포지션을 가진 농구선수로

농구 팬들에겐

" 모래반지 빵야빵야 " 로

가장 많이 알려졌다.

 

커리어내내

주전은 아니였으나

백업 포인트가드로 좋은 활약을 보였고

팀의 우승을 위해

헌신하는 플레이를 보이는 등

활약도가 굉장히 준수했던

선수로 기억된다.

 

 

 

 

 

KBL에 오기 전까지

은퇴 후, 동부 코치 시절

본래 본인은

태권도선수를 꿈꾸고 있었으나

부모님의 반대

다른 스포츠를 찾다가

농구선수 시작.

 

명지대 시절,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던 가드였으나

인지도가 낮았고

동갑내기 신기성에게

포커스가 밀리며

주목도가 굉장히 낮은 편이었다.

 

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8순위로

기아에게 지명되면서

첫 프로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에겐 아마추어 무대보다

프로가 제격이 되었다.

 

 

 

 

 

프로 첫 데뷔팀은 기아, 그리고 트레이드

기아 시절, 사진이 없.....

기아의 주전 포인트가드

강동희의 백업가드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준수한 모습으로인해

강동희의

체력을 안배해주는 역할

제대로 수행했다.

 

그를 능가할 수 없지만

그가 지칠 때,

대신 들어가 어느정도 밥값을 해준다는

그 느낌만으로도

팀에게는

보배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고

2년간 좋은 활약 후,

상무 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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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상무에 있을 때

본인의 트레이드 소식을 전해들었고

새롭게 기아에 부임한

최희암 감독이

기존 선수들을 모두 바꾸면서

팀 개편에 나섰다는 점에서

표명일 역시

희생양이 되어

KCC로 유니폼을 바꾸게 되었다.

 

당시 3대3 트레이드였고

 

기아- 구본근/이상영/김태진

KCC- 표명일/김동언/송태영

 

가게 되었다.

 

 

 

 

 

전화위복, 전주 KCC 시절

이번엔 이상민의 뒤를 받치다

기아 시절에

강동희 백업으로 활동했다면

전주 KCC로 넘어가

또 다른 주전 포인트가드 이상민의 뒤를 받치는

백업가드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기량은

더욱더 좋아져서 역시 이상민에게

휴식 시간을 부여했으며

03-04 시즌

전주 KCC가 우승

차지하는 데

충분히 기여하며

그 해에

기량발전상과 최우수후보상을

모두 차지하는 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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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치가 높아져

FA가 되었을 때 타구단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으나

표명일은 KCC에 남아 지속해서 일원이 되었고

점점 더 득점력도 좋아지며

이제는 팀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2007년 1월.

포워드 강화가 절실했던 KCC는

가드 부족으로

힘들어하던 원주 동부와

트레이드 딜을 단행했고 이 트레이드 중심에

표명일이 존재하여

그는 다시 한 번

트레이드를 통해

팀을 옮기게 되었다.

 

 

 

 

 

 

원주의 핵심으로 자리하다

원주에서도 우승을 경험하다

김주성의 몸값 때문에

이름값있는 포인트가드 자원을 영입하는 게

어려웠던 동부는

트레이드를 통해

표명일을 얻었고 구단의 선택은

그야말로 로또가 되었다.

 

표명일은 기아와 KCC를 거치며

주전은 아니더라도

큰 경기를 경험했고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동부에서 그의 장점들이

폭발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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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명일은 이렇다할 가드가

없던 동부에서

주전 포인트가드가 되어 활약하기 시작했고

07-08 시즌

동부가 우승을 하는 데

완벽한 활약으로

제대로 이바지.

 

여전히 스탯은 한자리 수에 

머물렀으나

기록에서 보이지 않는

가드로써의 여러가지 좋은 역할을 수행하며

박수 받기에 충분한

활약을 펼쳤다.

 

 

 

 

 

먹튀 전락 KT 시절, 그리고 은퇴

말년의 활약은 조금 아쉬웠다

09-10 시즌이 끝난 후,

표명일은 다시 한 번 FA가 되었고

KT 감독으로

새롭게 자리한 전창진 감독

기존 가드였던

신기성을 내치고 표명일을 영입하게 되었는데

무려 연봉은 4억.

 

또 하나 문제가 되었던 건

전창진 감독이

신기성을 내친 이유가 나이가 많아서였는데

정작 새롭게 영입한

표명일은 그와 동갑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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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표명일은

어느정도 나이가 들었고 폼이 떨어지면서

활약도가 미비했고

연봉 4억이라는

수치와 함께

팬들에게 대차게 까이며

먹튀소리를 듣기 시작.

 

11-12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고

말년에 부진하기는 했으나

그가 KBL를 대표하는

식스맨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표명일에 대한 TMI

 

 

 

01. KBL을 대표하는 명실상부 최고 식스맨이다

 

기아 시절 강동희의 백업,

KCC 시절 이상민의 백업을 담당하면서

그의 기량은 더욱더 좋아졌고

그들을 맘 편히

쉴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는 점만으로도

그는 제 역할을 했으며

그가 최고 식스맨으로

기억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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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표명일의 유명한 짤이 존재한다

일명 " 모래반지 빵야빵야 " 로 불리는

이 짤은 경기 도중,

표명일이 상대 외국인 용병에게

욕을 하는 장면과

어이없어하는 유재학 감독의 장면을 합성해서

만들어진 것이 퍼지면서

관심을 받은 것.

 

후에, 노라조가

맥심 표지모델 때, 이 짤을

패러디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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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한경기 40점을 넣은 적이 있다

 

무려 한 경기 10개의 3점을 포함하여

40점을 넣은 경기가 있으며

하필, 모든 중계사가

이 경기를 중계하지않으며 직관을 했던 관중을

제외한 나머지 팬들은

뉴스 기사로만

이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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