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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을 대표하는 레전드 슈팅가드

대한민국 국적

슈팅가드 포지션을 가진 농구선수로

전주 KCC의 레전드이자

KBL 레전드 가드

손꼽힐 수 있는 실력과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180cm의

비교적 작은 키에도

엄청난 스피드와 환상적인 무브,

독보적인 슛 감각으로

KBL 무대를

주름 잡았고

여러 해 우승도 경험.

 

창원LG 소속으로

국내선수 중 유일하게 MVP 타이틀

따낸 경험이 있고

현대/KCC 시절엔

이-조-추 라인으로 

전성기를 누빈 경험도 있다.

 

 

 

 

 

늦게 시작한 농구, 의리의 남자

모교 명지대 감독 시절

중3에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했으니

늦게 시작한 케이스

설상가상으로

더이상 키가 크지않아

그를 받아주는 팀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노력과 재능

빛을 발하며

어렵게 들어간 팀에서 주전이 되었고

강호 용산고를 상대로

극적인 승리

따내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으며

그 경기에서

조성원은 무려 40점을 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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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고려대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으나

고등학교 시절,

힘든 시기에

자신을 도와주었던 동료들과 의리를 위해

함께 명지대에 입학.

 

워낙 연대/중대/고대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과 함께 팀이 승승장구하며

조성원이 이끄는

명지대가

결승진출 자체가 불가능했으나

조성원의 능력은

더욱더 부각되어 많은 프로 팀들에게

러브콜을 받게 되었고

대학 졸업과 함께

현대에 입단하게된다.

 

 

 

 

현대의 전성기, 그 중심의 조성원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알리게 된 시기

입단 초에는

확실한 주전도 아니였고

본인도 만족스럽지 못한 플레이를 보였으나

군입대 후,

상무에서 이상민과 함께

팀을 이끌며

농구대잔치에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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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가 출범한

97-98 시즌

제대와 함께 현대의 일원이 되어서

포텐이 터진 그는

이상민, 추승균과 함께

이-조-추 라인업을 이끌었고

최고의 용병으로 꼽히는

맥도웰의 합류

화룡점정을 찍으며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기시작.

 

빠른 스피드로

속공 상황에서 마무리 짓거나

3점포로 연결하는 등

분위기를 바꾸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으며

특히, 4쿼터에 

더욱더 강한 모습을 보여줌에 따라

" 4쿼터의 사나이 " 라는

별명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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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99 시즌

평균 16.4점을 넣으며

챔피언결정전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본인은 MVP 수상.

 

99-00 시즌에도

서울SK에게 패하며 우승은 놓쳤으나

조성원은 개인적으로는

17.5점의

평균 득점을 기록하며

환상적인 활약.

 

그 시즌이 끝난 후,

신선우 감독은 팀 개편을 목표로 내세우며

공격적인 장점을 가졌으나

아쉬운 사이즈로

수비의 한계를 보인

조성원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하며

양희승과 1:1 트레이드되어

창원LG로

이적하게되었다.

 

 

 

 

 

창원LG 이적, 그리고 MVP

LG 공격농구의 중심이었다

창원LG로 이적하면서

김태환 감독을 만났고 조성원은

물 만난 물고기가 되어

팀의 화끈한 공격농구의 중심으로 활야한다.

팀 평균득점이

100점에 육박할 정도로

LG는 미친듯한 공격농구를 선보였고

조성원은 시즌내내

꾸준하고 폭발적인 모습으로

평균 25.7점과 함께

팀을 리그 2위까지 올리는 맹활약.

 

 그 해에

아쉽게 삼성에게 패하게 되면서

챔피언결정전

우승엔 실패했으나

조성원은 국내선수 중

독보적인 스탯과 활약을 바탕으로

시즌 MVP를 수상했고

창원 LG 구단

역사상 최초의 MVP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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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창원LG와 조성원 

모두에게 존재하며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화끈한 공격농구 대비

수비력은 문제점을 보였고

역시 사이즈에

한계를 가진

조성원 수비가 구멍이 되어

상대 팀들에게는

노림수로 작용한 것.

 

결국 조성원의

개인기록도 점점 더 내려갔고

설상가상으로

출전시간도 점점 더 줄어들게 되면서

주장임에도 조성원

팀에게 트레이드를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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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과 트레이드되어

서울SK로 이적했지만 그 곳에서도

수비의 한계를 보이며

제 역할을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어느정도 겉돌았고

결국 예전

신선우 감독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전주 KCC에

입성하게 되었다.

 

조성원은 분명

빠르고 공격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자원이었으나

신장이 작고

더불어 수비의 한계를 보였다는 점에서

현대와 LG 초반 이후의

행보는 여러가지로

아쉬움이 많았으며

농구=키

어느정도 동반되어야한다는 걸

말해주기도했다.

 

 

 

 

 

 

마지막 유종의 미, 전주 KCC

은퇴식을 함께한 이상민과 추승균

전희철과 트레이드되어

전주KCC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국내 빅맨을

여러 명 영입하며

팀을 개편하려했던 신선우 감독은

계속해서 실패하자

현대 시절,

본인이 꾸렸던 모드

팀을 다시 바꾸자는 계획과 함께

팀에 남아있던

이상민, 추승균에

조성원을 더하는 전략.

 

어느정도

전성기에 비해 폼이 떨어진 그였으나

공격력은 여전했고

03-04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17.2점의 평균득점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통해

팀에게 우승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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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폼이 더욱더 떨어지게 되면서

조성원은 점점 더

식스맨 롤로 변경이 되었고

허재 감독 부임 후에는

주전보단 조력자, 벤치 멤버로써의 역할

담당하게 되면서

자신을 역할을 받아들이는 모습.

 

05-06 시즌 후,

조성원은 결국 현역은퇴를 선언했고

2006년 8월,

전주 KCC와 중국리그팀과의

평가전을 통해

은퇴식을 가졌다.

 

대전 현대와 전주 KCC를 포함하여

세 번의 우승을 이끌고

활약했던

레전드의 모습을 보였으나

아쉽게도 구단은

그에게 영구결번을

지정해주지는 않았다.

 

 

 

 

 

조성원에 대한 TMI

 

 

 

 

01. 스피드와 3점을 모두 가진 최고의 공격수

 

조성원의 유일한 단점이

작은 키와 그로인한 수비의 한계일 뿐,

공격적인 면에서는

KBL 레전드에

남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선수였다.

캥거류슈터라는 별명답게

탄력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득점을 기록하고

특히, 중요한 순간

고감도 3점포로 승부를 결정짓는 장면을

여러 번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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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4쿼터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있다

 

유독 조성원은

4쿼터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러한 별명을 얻었고

큰 경기에 유달리

강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강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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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강병현의 말에 의하면 폭언이 없는 감독

 

창원LG 주장 강병현은

조성원 감독에 대해 이렇게 코멘트 했다.

" 폭언은 전~혀 없고 가장 심한 말이

임마! 일 정도다. "

그만큼 선수들을 거칠게 다루지 않고

신사적으로 대하는 듯.

(전 감독과 비교한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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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이상민과 호흡은 좋았으나 덜 친했다(?)

 

이-조-추 트리오는

말 그대로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며

수많은 우승을 이뤄냈는데

조성원 말에 의하면

이상민과 사석에선 친한 편이 아니었는데

경기만 치르면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이라

패스를 이곳으로 해줄꺼야~하고

보지도 않고 뛰어가면

이상민에게 패스가 전달되었다고 한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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