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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를 대표하는 정통 포인트가드

대한민국 국적

포인트가드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농구선수로

20-21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며

KBL 레전드로 남게 되었다.

 

연세대 시절,

환상적인 경기력을 통해

정통 포인트가드 최고 유망주로 평가받고

KBL 데뷔 역시

드래프트 1순위를 받으며

기대감을 모았고

신인왕을 수상하며

승승장구 할 듯한 느낌을 주었으나

그의 커리어를

전체적으로 본다면

유망주 시절의 화려했던 경력을

생각보다 이어가지는 못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KBL 6년주기

정통 포인트가드의 탄생이란 말이 있는데

강동희-이상민-김승현의

뒤를 잇는 선수

바로 김태술이었다.

 

 

 

 

 

KBL에 오기 전까지

어찌보면 가장 화려했던 시절

동아고 시절,

이미 천재형의 선수라는 타이틀과 함께

최고의 유망주로 꼽히며

6년주기 포인트가드로

지목이 되었던 그.

 

연세대 진학을 확정짓고

입학 전, 농구대잔치에 참가해서

자신의 유망함을

제대로 보여주며

고려대를 물리치는 등

연세대가 우승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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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이정석과 함께

포인트가드를 구성하며 활약했고

방성윤, 전정규, 양희종

포워드진도 

빵빵했기에 연세대는 그 시절,

무서울 것이 없었고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는 

연세대 소속으로

대표팀에 선발되는 영광까지 누렸다.

 

학년이 높아지면서

선배들이 졸업하고 센터진의 부족으로

연세대의 성적은 떨어졌으나

김태술의 개인기량은

이미 넘사벽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프로데뷔의 기대감을 높였고

그는 결국 졸업 후,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되며

서울 SK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데뷔를 이룬다.

 

 

 

 

 

 

서울SK 매직키드 시절, 신인왕까지

신인왕은 받았지만, 임팩트는 부족

첫 시즌

10.7점과 7.3어시스트의 기록을 남기며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고

본인도 신인왕 수상.

 

이 해에는

양동근, 신기성, 김승현

KBL를 주름잡고있던

가드들이 군대, 부상 등을 이유로 자리를

비우는 시간들이 많았고

그렇기 때문에

김태술이 조금 더

돋보인다는 의견도 존재했으나

김태술은 스스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으며

그 당시에는

리딩과 어시스트 능력은 물론

스스로 득점력까지 갖추었다는 점에서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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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SK를 대표하는

삼각라인으로

김태술-방성윤-김민수가 꼽혔고

구단에서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그들의 호흡을 기대하는 시선들이 많았으나

정작 각자의 부상 등으로 인해

서로 함께하는 시간들이

그닥 많지 않았고

김태술 역시

그나마 부상도 적고

꾸준하다는 평가를 받기는 했으나

임팩트가 부족했고

 

결국 서울SK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로하여

김태술을 김종학과 묶어

1:2 트레이드

주희정과 맞바꾸는 행보를 보여주었고

신인왕까지 받았던

김태술은 짐을 싸서

안양 KT&G로 이적하게 되었다.

 

 

 

 

 

우승을 경험하다, KT&G 시절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경험하다

안양 KT&G는

미래를 준비하며 주전급 선수들을

모두 군대로 보냈고

김태술 역시

그러한 계획속에

이적하자마자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간

복무하게된다.

 

그리고

복귀 시즌이었던

11-12 시즌,

이상범 감독이 팀을 이끌면서

양희종, 김일두

신인 오세근까지 가세하게 되면서 

안양은 튼튼한 

전력을 갖추게 되었고

 

김태술 역시

10.8득점과 4.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나름 쏠쏠한 모습으로

팀을 이끌더니

그 해 결국

팀이 챔피언결정전에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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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에

김태술은 우승과 함께

개인능력까지 인정을 받게 되면서

시즌 베스트5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고

미래를 준비하며

주희정 대신 영입한 안양 구단 측에서도

성공적인 시나리오.

 

하지만,

그 이후로의 행보는

점점 더 불규칙하고 기복이 심한 플레이

부진이 거듭되면서

팀에게도 별반 도움이 못했고

후에 알게된 사실은

그의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리며

멘탈이 흔들렸고 결과적으로

아버지는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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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는

양희종과 김태술이 FA가 되면서

먼저 양희종에게

거액의 연봉을 안기며

김태술은 재계약이 힘들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결국 계약을 했다가

곧장 트레이드로

전주 KCC로 이적하게되었다.

 

구단 측에서도

김태술을 전력 외로 분류하는 분위기였고

김태술 역시

팀에 남는 것보다

이적을 통해

새로운 출발을 원했던 것으로

밝혀지기도했다.

 

 

 

 

 

 

먹튀의 오명, 전주 KCC시절

가장 부진했던 시기

개막전이자

김태술에겐 데뷔전이었던 경기에서

5득점 3어시스트

부진하더니

시즌을 거듭해도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

벌써부터

먹튀소리를 듣기 시작.

 

본래 운동능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였으나

부상까지 겹치면서

기본적인 역할, 더불어 매치업 선수에 대한

수비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구멍이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어떻게 보면 자신을 믿고

영입해준

허재감독이 사퇴하며

더욱더 김태술에겐 힘든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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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나아지며

좋은 스탯의 경기를 치르기도 했으나

거의 손에 꼽을 수준이며

2년차였던

15-16 시즌에는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김태술이 나오면

지독히 팀이 따라잡히거나 스코어가

벌어지는 상황이 벌어지며

냉정히 말해

거의 민폐수준....

 

결국 16-17 시즌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김태술은

이현민과 트레이드되어

서울 삼성으로

이적하게 되었고

전주 KCC 팬들은 먹튀였던 김태술을

처리해준 삼성 구단에게

고마움(?)

표시하기도했다.

 

 

 

 

 

반짝 제 2의 전성기, 다시 부진의 삼성 시절

폼이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삼성 데뷔 후,

전반기 시즌에는 

제 2의 전성기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절치부심한 모습.

 

올스타전에도

김선형과 함께 선발 베스트5에 

이름을 올리는 등

반전의 시즌을 거듭하는 등 기대감을 모았으나

결국 거기까지....

 

후반기 시작과 함께

김태술이 

부진할 때의 모습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경기 맥을 끊거나

리딩의 한계,

센터에게 공을 셔틀(?)하는

정도의 롤 이외에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노장 주희정

신인급 이동엽에게

서열에 밀릴 정도로 폼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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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정 은퇴와 함께

신인급 가드들을 제외하면 포인트가드가

없던 삼성은

울며 겨자먹기로

김태술을 주전으로 써야했으나

폼을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다시 한 번

중요했던 챔피언결정전에서

귀신같이 부진하며

결국 삼성은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고

김태술은 19-20 시즌을 앞두고

삼성과 재계약 마무리 후,

정희원과 트레이드로

원주DB로

이적하게 되었다.

 

 

 

 

 

 

마지막 불꽃, 원주DB

안양에서 함께했던 이상범 감독과 함께

원주DB에서

안양 시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상범 감독 밑에서

재기를 꿈꿨으나

역시나 현실은 시궁창.....

 

20-21 시즌에도

부상을 이유로 팀에 늦게 합류,

김현호의 부상

김민구가 이적하게 되면서

가드진이 얇아지며 어느정도 출전시간을

보장받고 있으나

이렇다할 활약은 없는 편.

 

그리고

그는 결심했는 지

" 후배들의 길을 막을 수 없다 "

말을 남기고

이번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겠다 말했다.

 

그의 통산성적은

520경기 출전과 함께

7.5득점, 2.4리바운드, 4.5어시스트이다.

 

 

 

 

 

 

김태술에 대한 TMI

 

 

01. 정통 포인트가드의 계보는 이어갔다

 

시야가 뛰어나고

그에 걸맞는 패싱력도 수준급인 선수로써

전성기 시절에는

기발한 패스를 토대로

많은 기회를 창출했던 선수였다.

투맨게임에서

포인트가드가 해줄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을 모두 구현해주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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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뱅크샷이 또 하나의 무기였다

 

전성기의 김태술은

패싱과 함께 득점력도 꽤 준수한 가드였기에

10점이상의 평균득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주무기가

특유의 자리에서

뱅크샷으로

높은 성공률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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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신인 때, 인기가 정말 많았다

연세대 시절에도

그는 가장 인기가 많은 선수였고

서울SK 입단 후,

방성윤과 함께

구단에서도 밀어주는 게 있었지만

그만큼 인기가 굉장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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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대표적인 별명은 매직키드, 그외에는 스탯술

 

매직과도 같은

패스게임을 펼친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매직키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부정적인 별명으로는

스탯술이 있는데

부진한 경기력에 비해서 스탯이

좋은 편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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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공익근무요원 시절, 안습의 일화가 있다

 

공익근무요원 시절,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구단의 경기를

관중석에서 관람했는데

한 팬이 다가와

그에게 매점의 위치를 물어보았고

곧 김태술을 못 알아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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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예상외로 미혼이다

 

스포츠 스타들은

안정감(?)위해 결혼을 일찍 하는 편인데

김태술은 은퇴하는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아서

특이 케이스인 편.

비슷한 예로

전주 KCC의 이정현 역시

현재 미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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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농구계의 또 한 명의 건물주이다

 

농구계의

대표적인 건물주는 서장훈.

그와 더불어

김태술 역시 자신 명의로 된 건물이 있으며

어린 시절, 어렵게 자라서

반드시 성공해서

부도님을 호강시켜드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먼저 집을 사드리고

부동산에도 관심을 가져서

건물을 올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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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반말로 인성논란이 있다

대학교 시절,

같은 학년이기는 했으나

이동준과 김민수는 자신보다 나이가

각각 4살, 2살이 많은데

반말을 해서

인성 논란과 함께

그것에 의한

안티팬이 좀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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