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KT에서 오랜시간을 뛰었던 국내 빅맨 

대한민국 국적

스몰 포워드 & 파워 포워드

포지션을 가지고 있던 농구선수로써

그의 전성기가

중앙대 시절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아마추어 시절, 보여주었던 폼을

프로에서는

아쉽게 이어가지 못했던 선수.

 

2인 용병

뛰던 시절로 아마추어 시절을

주름 잡았던

국내 빅맨들

프로에 넘어와 그들에게

자리를 밀리고 깨지는 등 여러가지로

안타까운 시기가 되었고

송영진 역시

처음 입단했던

창원LG에서 어려움을 겪었으나

부산 KTF(현재 KT)

넘어가 그나마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하며

활약하다 은퇴했다.

 

 

 

 

 

 

김주성과 함께였던 중앙대 시절

두려울 게 없었던 시절

중1 때,

농구를 처음으로 시작했고

동기 중에는

KBL 출신의 가드

황진원이 있었다.

 

마산고 시절,

큰 키에도 활동량도 많고

3점까지 던질 수 있는 그 능력을 인정받아

청소년 대표로도 활약했으며

결국 중앙대 입학.

 

.

.

.

 

1학년 때에는

선배들에게 밀리며 주전이 아니였으나

2학년 때,

김주성이 들어와

송영진과 함께

트윈 타워를 구축하기 시작하면서

중앙대를 이끌었고

한기범-김유택의 재림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그들은 뛰어났다.

 

2m에 가까운 키

빠르고 운동능력이 뛰어났던 송영진은

경기 도중에도

여러 차례 덩크를 선보이는 등

화려하게 활약했고

슈터라고 하기엔

조금 거창할 수 있기는 하지만

빅맨으로써

오픈 찬스가 나면

높은 확률로 3점을 넣는 등

다재다능함을 보이며

그의 전성기는

중앙대시절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

.

.

 

그리고 결국

중앙대에서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2001 KBL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창원 LG에게 호명되어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그 시작은

잘못된 만남이 되고야만다.

 

 

 

 

 

맞지 않는 옷, 창원LG 시절

억지로 체중을 불렸던 시절

창원LG 입단과 함께

자신의 장점을 펼쳐보이기도 전에

그 당시 프로 무대에선

용병 2명이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시기가 되었고

그들에 비해

경쟁력이 약했던 송영진은

포지션이 애매해지며

 

감독의 권유로

80kg때였던 체중을 90kg이상 불리며

파워 포워드로

포지션 변경을 감행한다.

 

.

.

.

 

하지만,

애매하게 몸만 커진 송영진은

오히려 자신의 장점이었던 큰 키에 비해

빨랐던 스피드가 줄어들며

장점이 살아졌고

설상가상으로

3순위 신인 드래프트 동기

김승현이

날라다니는 것에 비해

1순위인 자신이 부진하며 더해진 부담감으로

점점 더 위축되기시작.

 

결국 송영진은

팀에서 계속 겉돌게 되었고

04-05 시즌이 끝난 뒤,

구단에서 현주엽을 FA로 데려오게 되면서

보상선수 개념으로

송영진을 보내 버리게 되면서

KTF로 이적하게 되었다.

 

.

.

.

 

후에 송영진은 인터뷰를 통해

포지션, 체중증가

여러가지 박태환 감독과 갈등을 가지고 있었고

본인 스스로 성적도 나오지 않아

큰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

창원 LG 시절이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

 

결국 그는

구단의 선택으로 인해

거의 버림 받으며 부산 KTF로 이적했지만

오히려 그 이적으로 인해

터닝 포인트를

마련하게 되었다.

 

 

 

 

 

 

KT의 중심으로 거듭나다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기 시작하다

추일승 감독은

송영진이 본래 가지고 있던 장점들

끄집어내며

그를 전술에 녹였고

스피드를 찾으며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기 시작한 그는

날아오르기 시작.

 

05-06 시즌

기량발전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부활을 상으로써 인정 받았으며

이듬해 한 시즌

13.6점이라는

순도높은 평균 득점과 함께

KT 구단 사상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우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그 시기에

국가대표 유니폼까지 입는다.

 

.

.

.

 

역대 보상선수 가운데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꼽히게 되었으며

다시 얻은 FA에서

팀에 남아

의리를 지키는 등

부산 KT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전창진 감독 시절에는

감독의 요구에 따라 3번이 아닌 4번으로

역할을 변경하며

인사이드에서

수비를 이끌고

적극적으로 리바운드 참여하는 등

새로운 롤에도

부담없이 적응하기 시작.

 

.

.

.

 

수비력도 많이 올라왔고

골밑은 물론

외곽도 기회가 나면 쏠쏠하게 득점을 올려주는

그의 능력은

국가대표로 뽑힐 수준이었고

나이가 점점 들어도

KT의 4번 국내선수 1옵션은

송영진의 차지.

 

13-14 시즌이 끝난 후,

다시 한 번 FA 기회를 잡은 송영진은

큰 욕심없이

KT 구단과 재계약을 맺으며

팀에 남았고

 

14-15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총망받던 유망주에서 큰 실패를 맛보았으나

굳은 의지로

자신의 진가를 다시 발휘하며

KBL에서

수준급 국내 빅맨이라는

타이틀을 남기고

코트를 떠나게 되었다.

 

 

 

 

 

 

송영진에 대한 TMI

 

 

 

01. 다재다능한 유형의 선수

 

큰 키에 스피드가 있고 돌파와 3점능력까지

갖추었다는 공격적인 장점과 함께

수비에서도 준수하며

국내 빅맨들을

어느정도 커버할 수 있으며

수비이해도도

훌륭하다는 점에서

송영진은 속히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

.

.

 

02. 우울증을 이겨내다

 

워낙 대학 시절, 김주성과 함께

전성기를 누비며 승리만을 맛보았던 그였기때문에

프로에 넘어와

용병들에게 밀리고

포지션도 애매해져 억지로

살을 찌우고

더불어 신인왕 경쟁상대였던 

김승현이 독보적으로 뛰어나게 잘해버리자

이래저래 마음 고생이 심했을 터.

결국 정신과 치료까지

받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겪었고

그럼에도 그것을 이겨내고

보란듯이 부산에서 부산의 남자가 되어

국가대표까지 이루어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