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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알려졌으며

 

공격과 미드필더 그리고

수비 포지션

모두 소화 할 수 있는

그 시대 진정한 멀티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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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와의 

월드컵 첫 경기에서

선배 황선홍의 선제골에 이어서

쐐기골을 터트리며

국민들을 흥분 시켰으며

 

국가대표로도

중요한 경기에서 더욱더

좋은 활약을 보이며

커리어 내내훌륭한 활약을 보였다.

 

 

 

 

화려했던 울산현대 1기 시절

득점왕도 차지했었던 울산현대 1기 시절

건국대 졸업 후,

K리그에 데뷔 했으며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고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팀의 에이스 역할을

묵묵하게 수행했는데

그가 신인 때,

감독이었던 차범근 감독

그의 실력을 보고

분데리스가로 진출 시키겠다는포부를 밝혔지만

 

그가 너무 이른 시간에

경질됨에 따라

그 포부는 지켜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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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현대 시절에도

유상철은

멀티플레이어로써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K리그 역사상

공격, 미드필더, 수비 포지션으로

각각 베스트11

이름을 올린

두 번째 선수였다.

(첫 번째는 김주성)

 

기본적으로

피지컬과 좋은 체력

기반으로 지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에 상응하는

전술 이해력을 보여주며

어떠한 포지션에뛰어도 이름값을 해내는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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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시즌에는

23경기 15골이라는

환상적인 골 감각을 바탕으로

생애 첫 득점왕

이름을 올렸으며

 

그 해에

베스트11에도 

이름을 올렸는데

미드필더로 지명되었으니,

 

그가 얼마나

멀티플레이어로 다양한

장점을 가진 

선수였는 지 보여주는 부분.

 

 

 

 

 

 

 

 

 

 

유비의 찬란했던 J리그 시절

J리그를 평정했던 유상철

1999년

요코하마 유니폼을 입으며

J리그 생활

시작했고

 

2년간 뛰면서

이 곳에서도 포지션이 비면

그 곳을 메꾸는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살림꾼 역할을 했고

 

2000년에는

김현석과 함께 

득점왕 레이스를 펼칠 정도로

득점력도 수준급.

 

어느정도

팩트에 기반한 내용인 지

확인할 순 없지만

이 때에 유상철은 바르셀로나의 오퍼

받기도 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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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해,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했고

이 때에 팀에는

황선홍, 홍명보가 존재하며

세 명의 한국 국대가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기도 했고

 

꽤나 많은

타이틀을 따내며

J리그에서

인정 받을 수 밖에 없는커리어를 쌓았다.

 

 

 

 

 

 

 

 

 

 

마지막은 울산, 그리고 은퇴 선언

울산 현대에서 은퇴한 레전드 유상철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J리그에서

울산현대로 돌아와

활약했으며

 

다시 요코하마로 가서

뛰기도 했지만

2005년 친정팀 울산으로

복귀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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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계속해서 좋지 못했던

무릎이 말썽이었고

재활을 이어갔지만 

결국 복귀 자체가 힘들어지면서

2006년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국가대표로써의 유상철

국대에서도 살림꾼 역할을 톡톡히 해낸 유상철

1994년 A매치 데뷔했고

미국월드컵에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그 해에 벌어진

아시안게임 일본전에서극적인 동점골

A매치 데뷔골이 되었고

그것을 기점으로

대표팀의 주전급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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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벨기에전

득점을 올렸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폴라드전득점에 성공하며

 

월드컵에서

역대 2골을 기록한

선수로 기록.

 

국대로써

최전성기는 2002년이었고

한일 월드컵에서베스트11에 선정되었으며

 

" 탁월한 볼 배급과 침착성을 바탕으로경기를 지배하는 스타일 "

 

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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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홍, 홍명보의 은퇴로

그 후에

대표팀 주장이었으며

 

공격력도 좋아

안정환과 투톱 형태로

경기를 뛰기도 했는데

 

역시 국대에서도

그의 멀티플레이어 본능

떠나질 않았다는 것.

 

2004 아테네 올림픽에와일드카드

출전하여 8강을 해냈고

내심 2006 독일 월드컵 출전도

바라보았지만

부상으로 인해

결국 그 시기에 은퇴를 선언했다.

 

 

 

 

 

 

 

 

 

 

 

유상철에 대한 TMI

 

 

 

 

01. 바르셀로나에 오퍼를 받은 적이 있다

 

1998년 여름,

그 당시 바르셀로나의 반 할 감독은

자신이 원했던 선수의 영입이

불발되자 차선책으로

유상철의 영입을 고려했으며

 

그 당시,

유상철이 거절했는데

영입이 아닌 입단 테스트 형식이라

거절했다는..ㄷㄷㄷㄷ

 

실제로 바르셀로나는

유상철을 원했으며

그 당시 시대적으로 국내선수가

유럽에 가는 게

굉장히 드물고 구조상

힘들었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실로 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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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한 쪽 눈이 실명상태이다

 

이미 선수시절부터

왼쪽 눈이 실명된 상태였으며

경기에도 한 쪽 눈만

보이는 상태에서 뛰었다고

은퇴 후, 인터뷰를 통해서 밝힌 바 있다.

 

그렇기에 더욱더

노력하고

연습량을 늘릴 수 밖에 없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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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김태영의 타이거 마스크는 유상철 작품?!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전을 통해

코뼈가 부러진

김태영에게 타이거 마스크를 건낸

인물은 유상철이였으며

 

일본업체를 연결해 준

형태라고 하는데

그 덕분에

김태영의 이미지가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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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이강인의 스승이었다

 

" 날아라 슛돌이 " 프로그램의

감독을 맡으며

그 당시,

5살이었던 이강인을

지도한 경력이 있으며

 

그 당시에도

완성단계를 갖추고 있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기에

자기는 한 게 없다며

겸손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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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췌장암 투병 중이며 많이 회복한 상태이다

 

췌장암을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자신이 맡고 있던

인천의 감독직을 내려놓기도 했다.

 

회복이 많이

이루어진 상태로 알려져 있으며

다양한 곳에서

쾌유를 응원해주는

모습을 보이며

훈훈한 장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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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게임 속, 아시아 선수 유일 슈팅파워 90

 

1998년에 출시되었던

위닝일레븐6 

게임 속에서

아시아 선수로써는 유일하게

슈팅파워 능력치가

90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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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쿠만의 칭찬이 그를 더 돋보이게 한다

 

현재 바르셀로나 감독에 있으며

네덜란드 축구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쿠만은

유상철에 대한

코멘트로

 

" 오른쪽 풀백으로 꾸준하게 뛰었다면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

 

라는 말을 남겼는데

그만큼 유상철은

다양한 포지션에 실력을 갖춘

선수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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