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국적
공격수 포지션을 가진 축구선수로
제 2의 펠레,
어릴적 네이마르의 우상으로
알려진 선수.
펠레가 산투스 시절 호비뉴의
연습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짓고
" 너는 어릴적 나를 보는 것 같구나.. "
그의 재능을 인정했던 건
유명한 일화가 되었으나.....
펠레의 저주였을까?
선수 말년은
성폭행범이라는 지울수없는 범죄로
현재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지는 않았으나
선수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럽 데뷔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2002년
자국리그 산투스에서
프로무대를 데뷔했던 그는
브라질 리그의
세울수있는 각종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판타스틱한 활약을 보였다.
펠레도 여러 번
호비뉴를 자신의 후계자로 평가하며
자신의 어릴적을
보는 것 같다는 멘트를 했는데
그만큼 호비뉴의
유망함은 상상이상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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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활약을 지켜본
레알 마드리드가 그를 과감히 영입했고
2005년 입단 시,
그에게 피구가 달고있던
등번호 10번을 주며
그에 대한 기대치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입단 후,
2개월에 걸쳐
8골을 넣으며 그 기대감을
제대로 충족시켜주었던 호비뉴는
그 후에는 주춤했으나
첫시즌에
51경기 12골을 넣으며
레알 마드리드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리라 예상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라이벌 바르셀로나에 신예로 등장한
리오넬 메시와 비교되며
함께 거론되었는데
브라질-아르헨티나라는 국가적인 라이벌과
바르셀로나-레알 마드리드라는
클럽적인 라이벌 구도가
겹치게 되면서
팬들도 관심도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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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드리블과
리듬감있는 플레이는 팬들의 눈을
제대로 사로잡았고
패스 감각도 좋은 편이라
그가 보여주는
폼이 좋을 때의 경기력은
그야말로 판타스틱 그 자체였다.
하지만, 호비뉴는
마드리드에서 지속적으로 뛰면서
카펠로 감독과
마찰을 빚게 되었는데
일단 그를 윙어로 세우려했고
감독의 스타일은
자유분방함보단 실리있는 전술축구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호비뉴와 맞지 않았다.
카펠로 감독이 물러나고
새로운 감독이 오게 되면서 호비뉴는
다시 프리롤을 부여받아
공격의 중심으로
활약하기 시작했고
07-08 시즌
42경기 15골의 스탯을 남기며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가장 좋은
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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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가올 새시즌을 앞두고
칼데론 회장은
호비뉴를 활용하여 맨유에서 주가가 높아진
호날두를 영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그것을 알게된 호비뉴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재계약을 거절한 채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90%이상
첼시 이적이 확정된 상황 속에서
뜬금없이 맨시티로
이적하게 되면서
놀라운 행보를 보였다.
맨시티 개혁의 첫 시작과 같은 존재
호비뉴의
맨시티행은 충격적이었다.
일단 언론이나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가
첼시행 확정이
예상되는 상황이라 그랬고
그보다 더 큰 것은
그당시만 해도
맨체스터 시티는 그저그런
중위권 팀에 불과했다.
흥미롭게도
만수르 구단주가 맨시티를 인수하는 날,
호비뉴 영입이 이루어졌고
맨시티가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가며
강팀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으로
호비뉴가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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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비뉴는
다른 모든 것을 떠나
축구 실력은 정말 뛰어난 선수였다.
맨시티 10번을 달고
에이스가 되어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며
팬들을 즐겁게 했는데
레알 마드리드 때와
비슷한 흐름으로 리그 초반에는
좋은 폼을 보였다가
여러가지 문제들이 엮이는 등
후에 아쉬운 모습으로
그 행보가 정말 비슷했다.
당시 마크 휴즈 감독은
호비뉴의 공격력을 신뢰하며
그를 세컨 스트라이커 자리로 두는 전술을 썼는데
비교적 성공적이었고
수비의 부담을 덜며
스스로 득점을 만들어내거나
동료의 득점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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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치니 감독이 부임하면서
그를 윙어로 쓰려는 생각을 보이자
마드리드때처럼
그는 불만을 가졌고
거기다가
영국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등
멘탈적으로 흔들리며
결국 고국의
친정팀 산투스로 임대를
떠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맨시티 시절의 스탯을 보면
53경기 16골을 넣으며
스타 플레이어로써
아쉽기는 하지만 먹튀까지는 아니였는데
그에 대한 기대감이나
특히 리그 초반에
보여주었던 퍼포먼스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산투스 -> 새로운 곳 AC밀란
산투스로 돌아가
좋은 폼을 되찾자 호비뉴에 대한 관심도가
다시 높아졌고
본인 스스로
산투스에서 계속 뛰고 싶었지만
맨시티 입장에서는
다시 주가가 올랐을 때,
그를 팔기 원했고
결국 2010년 8월.
AC밀란과의 계약을 확정 지으며
그는 이탈리아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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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과 달리
오히려 리그 초반에는 적응문제인 지
월드컵 이후라
체력적으로 문제인 지
부진한 모습을 보였는데
오히려 시간이 지나며
폼을 찾기 시작하더니 환상적인 모습으로
팀의 공격을 이끌며
에이스가 되었다.
결국 첫 시즌,
리그에서 14골을 넣으며
제대로 활약했고
팀도 세리에A 우승을 차지하게 되면서
호비뉴 우승 커리어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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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후로
호비뉴는 기복이 심한 플레이를 보였고
부상도 잦아지면서
기대했던
슈퍼스타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13-14 시즌에는
잠깐 반짝했을 뿐
전체적으로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내면서
결국 14-15 시즌을 시작하기 전,
다시 한 번
친정팀 산투스로
임대를 가게 되었다.
돈이 궁했니... 중국 진출
AC밀란이
주급을 주면서 보낸 브라질.
산투스에서 호비뉴는
33경기 11골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리며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는 듯 했으나
그의 후의 행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2015년
그는 광저우 헝다 유니폼을
입게 되면서
중국리그에 진출한 것.
추가적인 영입이라
출전경기 자체가 많지는 않았고
광저우에 뛰면서
9경기에 나와
3골을 넣는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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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스타들이 그렇듯이
중국 리그에 진출 후, 오래 뛰지않고
팀을 떠나는 것처럼
호비뉴 역시
6개월만에
팀을 나와 자유계약선수가 되었다.
브라질, 터키리그 -> 다시 산투스
중국을 떠난 후,
브라질 리그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와
2년 계약을 맺으며 뛰더니
2018년 1월.
돌연 터키리그 진출.
시바스스포르, 이스탄불에서
각각 뛰었고
14경기 4골/32경기 4골을 기록했으니
이제는 어느덧
평범한 선수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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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가 되어
다시 한번 산투스와 계약을 맺으며
4번째 입단과 3번째 복귀를
이루어냈다.
팀이 재정난을 겪어
월급 기준 31만원만 받기로 했으며
그러던 와중에
성폭행 혐의를 받으며
현재까지도 선수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중이며
아마도.. 복귀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대표로써의 호비뉴
2003년
골드컵 무대를 통해
A매치에 데뷔했고 데뷔골은 2005년에 기록.
2006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나
판타스틱4에 밀려
벤치에만 있는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2007 코파 아메리카에서
6골로 득점왕과 함께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어냈는데
당시 대회에서
카카, 호나우지뉴가
불참을 선언하며
포지션 겹치는 것 없는 호비뉴의
세상이 되었다.
전력이 약화되어
우승후보로 평가 받지 못하던
조국을 에이스로 이끌며
우승을 차지 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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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있는 플레이로
결국 조국에서 열린 2014년 월드컵도
불참하게 되었으나
그 후에
오히려 다시 소집 되어서
현재 기준으로
단 7명밖에 기록하지 못하고 있는
브라질 선수로써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A매치 100경기 28골
호비뉴에 대한 TMI
01. 네이마르의 우상이었다
네이마르는 어릴 적,
호비뉴의 플레이를 보며 축구선수의 꿈을 키웠고
호비뉴의 기술들이
네이마르에게
접목된 것들도 일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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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펠레가 점찍은 후계자였다
유망한 산투스 시절,
호비뉴의 플레이를 실제로 지켜보면서
그에게 다가가
어릴 적 나를 보는 것 같다며
칭찬을 하고
공공연하게 언론에
자신의 후계자로 호비뉴를
지목했던 펠레.
호비뉴의 재능은 그만큼
남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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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대표적인 별명은 " 초딩요 "
일단 외모 자체가
너무 동안이라 그러한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성격이나 멘탈 자체도
어린아이 같아서
붙여졌다는 썰도있다.
본인에게 팀이 희생을 요구하거나
자신을 중요시 여긴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면
멘탈이 흔들려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쳤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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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성폭행 혐의를 받고있다
2009년 영국에 있는
나이트 클럽에서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바 있으며
보석이 풀리고
그 후,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된 바있다.
하지만, 2013년
이번에는 이탈리아에서
집단 성폭행에
가담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서
징역 9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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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수원 삼성에서 뛸 수 있었다?!
한때 K리그 용병=브라질
공식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수원 삼성은
산투스 유스에서 뛰던
16살의 호비뉴를 영입할 기회를 잡았는데
그 당시 구단에서는
너무 어린 선수에게 쓰기엔
금액이 크다는 생각으로
결국 입단 제의를 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 슈퍼스타를
K리그에서 미리 볼 기회를
놓치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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