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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슈터란 별명을 가진 농구선수

대한민국 국적

슈팅가드 포지션을 가진 농구선수로

본래 KT 프랜차이즈

스타였으나

마지막 팀은 창원LG가 되었다.

 

포스팅을 하는

2021년 5월 24일 날짜로

현역은퇴를 선언했고

" 조선의 슈터 " 라는 별명을 가진 

역대급 슈팅력을 가진

KBL와 국대를

대표할 수 있는 슈팅가드 자원이다.

 

 

 

 

 

부산의 남자가 되다(Feat. 한양대 시절)

조금씩 꾸준히 성장한 케이스

아마추어 시절,

고등학교/대학교를 함께했던

김학섭과의 호흡

지금까지도 회자가 되는 부분인데

그 당시에는

김학섭이 에이스였고

조성민은 주목도가 낮은 편이었다.

 

김학섭은

대학 진학과정에서

연세대에도 충분히 입학이 가능했으나

친구인 조성민과의

동시 입학을 위해

한양대를 선택한 이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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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시절,

김학섭

당시 한약대학교 김춘수 감독에게

수차례 구타를 당하며

방황했고

반면 감독에게

이쁨을 받았던 조성민

주전으로 활약하며

조금씩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같은 해,

KBL 신인 드래프트에 나갔고

방황했지만 이미

네임벨류가 어느정도 있었던

김학섭이 4순위로 모비스 유니폼을 입었고

조성민은 8순위로 KTF(현재 KT)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 데뷔를 이루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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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즌부터

추일승 감독에게 눈도장을 받으며

어느정도 기회를 잡았으나

하필 이 시기에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급작스럽게 사망하는

불운을 겪게 되면서

제대로 실력 발휘가 되지않았다.

 

오히려 그는

상무 제대 후, 존재감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완벽히 주전으로

나서기 시작하면서

부산 KT의 중심이 된다.

 

타구단에 비해

농구 인기팀이 아니었던 부산 KT는

주목도가 낮은 편이라

조성민에 대한

인지도나 관심도가 없는 편이었는데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게

바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게 된 것.

 

이 때에

조성민은 슈터로써의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농구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알리게 되었으며

그 후로 국대에

단골로 뽑히는 선수가 되었다.

 

 

 

 

KT 중심이자 프랜차이즈 스타

전창진 감독 밑에서 날개를 달다

KT 전창진 감독의

모던 오펜스 중심이된 조성민은

날개를 달았고

10-11 시즌

팀이 정규리그 1위를 기록하는데

에이스로 활약하며

MVP 후보로도

꼽혔지만

아쉽게 박상오에게 내주었다.

 

그 시기와 맞물려

국대에서도

꾸준하게 주전급으로 활약하며

2012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필리핀과의 3/4위전에서

환상적인 활약으로

대표팀의 올림픽 티켓을 확정짓는데

알토란 같은 활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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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 시즌,

15점에 육박하는 평균득점과 함께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며

역시나 이때에도

MVP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수상은 문태종이 했고

그는 2위의 기록을 올렸다.

 

1경기에

3점슛 10개를 넣는 경기를 만들며

3점 슈터로 독보적인

클래스를 

보이기도 했던 그는

자유튜성공률도 독보적으로 좋아

한때 56개 연속

자유투성공을 기록하며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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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인 부상으로

팀에서 이탈하는 등 어려운 시간들도

존재했으나

복귀해선

역시나 KT의 에이스이자

살림꾼 역할까지

도맡으며 꾸준하게 활약을 이어갔고

조동현 감독이

새롭게 부임한 시기에는

주장을 맡으며

여러가지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어깨를 비롯하여

다양한 부위의 부상들이 찾아오면서

부진이 이어졌고

2017년 3월,

조금은 충격적인

트레이드 소식이 전해졌으며

조성민이 김영환+드래프트 1차 지명권으로

창원LG로 이적하게 되었다.

 

하지만,

더욱더 놀라운 반전은

그렇게 1차 지명권은 얻은 KT

다음해 이 지명권으로

허훈이라는

대어를 낚는다.

 

 

 

 

 

새로운 시작, 하지만 맞지않은 옷 LG

부상과 노쇠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조성민 본인이 가장 충격적이었던

트레이드가 진행되었고

11년간 뛰며

은퇴까지 이 곳을

떠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그에겐

서운함이 동반

충격이 컸던 모양.

 

KT 측에서

연봉이 높은 조성민은 정리하고

샐캡을 확보하는 것이냐

의견들이 있었으나

트레이드 대상

조성민보다 연봉이 더 높았던

김영환이라는 점에서

성립이 안되어

사령탑에 오른

조동현 감독과 의견이 맞지 않았다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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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로 이적한 후,

현주엽 감독과 궁합이 좋지 않은 편이라

출전 시간도 줄어들고

4쿼터 중요한 순간에

오히려 벤치를 지키는

팬들조차 조성민의 출전을 목놓아 외쳐도

현주엽 감독은 외면했다.

 

나올 때마다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주며

이름값을 했지만

확실히 어깨를 비롯하여 다양한 부위에

부상이 자주 찾아오고

전성기 시절에

제대로 휴식시간을

부여받지못하고

너무나도 많은 경기를 뛰었던 여파가

조금씩 찾아오면서

하락세가 찾아오는 모습.

 

FA가 되면서

창원LG를 떠날 가능성이 높아보였으나

3년 5억이라는

꽤나 높은 금액으로

재계약하며

새로운 활로를 찾는 듯 보였으나....

 

 

 

 

조선의 슈터 은퇴하다

폼을 끝내 찾지 못했다

현주엽 감독이 떠나고

조성원 감독이 새롭게 부임하면서

조성민 역시

새로운 시작

도모하는 분위기가 마련되었으나

일단, 폼 자체

너무 많이 떨어지 상황에서

그의 활약으

두드러지지 못하며

20-21 시즌, 팀의 최하위 하락과 함께

조성민의 활약 역시

떨어진 시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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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시즌을 끝으로

다시 한번

FA자격이 주어지게 되면서

시장에 나왔으나

이미 기사로는

그가 은퇴할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으며

구단과 아직 얘기가 되지 않았다라는

정정 기사가 나왔으나

결국 5월 24일 날짜의 기사

그의 현역은퇴 소식이

전해지게 되었다.

 

 

 

 

 

조성민에 대한 TMI

 

 

 

01.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프로에서도 꾸준했으나

농구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알렸던 건

바로 국가대표에서의 좋은 활약.

중요한 경기, 중요한 순간에

그가 터트리는 3점은

쐐기포 혹은 결승포가 되었고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주전으로 나오며

환상적인 슛감으로 팀의 우승을 안기며

이 때에

" 조선의 슈터 " 라는

별명을 제대로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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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3점, 2대2 플레이 모두 능한 선수

 

조성민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3점슛이다.

높은 정확도와 함께 타점 자체가 높은 편이고

BQ가 높아 공 없을 때의

좋은 움직임으로

무한한 3점 찬스를 만들어

득점에 성공한다.

그 뿐만 아니라

좋은 BQ를 통해 

용병 혹은 국내 센터들과의

2:2 플레이도

가장 잘했던 국내선수 중 한명으로 꼽히며

공격적인 면에서

다양한 옵션을 가진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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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클러치 능력이 좋은 선수이다

 

그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큰 무대, 큰 경기 중요한 상황에서

더욱 빛을 낸다는 점이다.

패턴도 다양해

소속팀이나 국대에서도

그가 1옵션으로 공격역할을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 편이며

KT 시절,

마지막 위닝샷을 앞두고

전창진 감독에게

자신있게 본인이 3점을 던지겠다 말한 후,

결국 득점에 성공하며

극적인 장면을 만들기도했다.

 

https://youtu.be/FlKrtBN_JL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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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윤호영과의 충돌사건

https://youtu.be/YY3NR8YbwLQ

동부와 KT의 경기 중,

서로 매치업 상대였던 조성민과 윤호영이

충돌하여 경기가 중단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1년 후배였던

윤호영이 조성민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거친 언행까지 서로

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윤호영 인성논란이

나오기도했다.

후에, 조성민은 윤호영을 찾아가

사과를 했으나

윤호영은 끝까지

사과의 제스처를 보이지 않아

더욱더 인성논란이

가중되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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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안면신경마비를 앓은 적이 있다

 

부모님을 잃고

그는 큰 충격과 함께

빠르게 입대를 선택한 케이스였는데

그 때의 스트레스로

안면신경마비를

앓았던 적이 있으며

그의 얼굴이

지금까지도 조금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이유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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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KT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고싶어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가 11년간 뛰었던 KT를 떠나

LG로 이적한 건

전~혀 그의 의지가 없는 갑작스런 행보였고

결국 그토록 원했던

프랜차이즈 스타로써의

선수생활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뭐~ 어쩌겠는가

프로의 세계는 냉정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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