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고 국적
스트라이커 포지션의 축구선수로
아스날에서 뛰었으며
맨시티 이적 후,
그 유명한 역주행 세레모니로
아스날 팬들에게는
천하의 죽일놈으로 불린다.
토고의 대표적인
축구선수이자 스트라이커로
멘탈이 좋지 못한 편이라
클럽에서도 감독/선수들과 불화가 많아
항상 이적설이
따라다니던 선수였으며
실제로 저니맨과 같이
다양한 팀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불화가 따라다니던 유망주 공격수
FC메스 유스를 거쳐
프로 데뷔 역시 프랑스리그 FC메스에서
이루어 냈으며
1999년 1군에 합류했는데
팀이 2부리그로 강등됨에 따라
2부리그에서 뛰었는데
그곳에서 17골을 넣음과 함께
팀을 승격 시켰다.
이후, 조금씩 성장하며
AS모나코로 이적하는데 성공했는데
이때에도 그의 성질머리는
온전할 길이 없어
갈등을 맺었고
주급문제와 무단 이탈 등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일으키며
구단과 멀어졌다.
하지만, 확실히
아데바요르는 축구 재능이 있었고
2006년 겨울이적시장에서
그의 유능함을 보았던
아스날이 그를 영입하게 되면서
그는 EPL로
무대를 옮기게 되었다.
아스날 이적
실력은 인정, 인성은 인정 X
첫 시즌에는
부동의 스트라이커 앙리의 존재로
아데바요르의 출전시간은
극히 적고도 적었다.
06-07 시즌에는
베르캄프 은퇴와 레예스의 임대 등
앙리를 제외한 공격수들이
팀을 떠나게 되면서
조금씩 기회를 얻게 되었고
좋은 경기력으로
평가가 점점 좋아지기는 했으나
골결정력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그의 대한 평가는 냉정하게
호불호가 갈렸다.
특히 이시기에는
앙리까지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되며
아데바요르가 해줘야하는
시점이 존재했는데
정말 극강의 부족한 골결정력으로
기대를 충촉 시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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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등의 기회가 왔다.
07-08 시즌, 앙리가 바르셀로나로 떠나며
1옵션 공격수로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은 것.
그리고 이 시즌에
아데바요르는 공식 경기를 모두 포함해
총합 30골을 넣게 되면서
팬들의 환호와 함께
본인의 포텐을 제대로 터트렸다.
08-09 시즌에도
부상과 부진이 공존하기는 했으나
그 속에서도 14골을 넣으며
어느정도 잘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아스날의 일원으로써
장기계약을 맺는 듯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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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그는
일전부터 아스날 구단과
주급 문제로 갈등을 빚어왔었고
벵거 감독은
계속 말썽을 일으키는
아데바요르를 이적시키기로 마음 먹었고
지속해서 이적설이 있었던
AC밀란이 아닌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게 되면서 팀을 떠났다.
25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발생 시켰으며
아데바요르는 아스날 시절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주급을 받게 되면서
일단 본인이 원하는 상황을
어느정도 마련한 이적이 되었다.
맨시티 입단, 아스날 전 역주행 세레모니
이적 후,
초반에는 득점 페이스도 훌륭하고
팀에 보탬이 되었고
하지만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득점을 터트린 후
세레모니 과정에서
아스날 팬들이 있는 진영으로 뛰어가
역주행 세레모니를 펼치는
말도 안되는
행동을 보이기도했다.
본인은 아스날 팬들이
자신에게 인종차별과 욕설 등
거칠게 대한 것에
보복성으로 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프로선수로써 절대 해서는 안될
행동인 것은 분명.
또한 반 페르시의
얼굴을 가격하며 협회로부터
3경기 출전 정지의 징계를 받는 등
실력과 달리
여러가지 인성적인 면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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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이 끝난 후에는
이적설이 나돌기 시작했는데
맨시티가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하며
뛸 수 있는 팀으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는데
여러가지로 참
맨시티 팬들에게는
정이 안갈 짓만 하는 듯.
10-11 시즌,
벤치에 있는 시간이 늘어갔고
팀 동료 콜로 투레와
난투극을 벌이는 등
점점 더 팀에게 도움이 되지않을 행동을
보여줌에 따라
이적설이 난무했다.
그러던 중,
맨시티가 분데스리가를 씹어먹던
에딘 제코를 영입함에 따라
아데바요르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졌고
결국 그는 공격수 자원이 필요했던
레알 마드리드로 임대를
떠나게 되면서
라리가에서 새로운 도전을
나서게 되었다.
굵고 짧았던 레알 마드리드 시절
레알 마드리드는
이과인이 이미 큰 부상을 당하며
시즌아웃 되었고
벤제마가 부진한 상황에서
새로운 공격수가 필요한 시점이였기에
아데바요르를 데려왔다.
데뷔전에선
득점없이 부진했으나
국왕컵 4강전에서 벤치에 있다가
모든 찬스를 날려먹은
벤제마를 대신해서
후반 막판에 교체들어가게 되었는데
득점을 기록하며
신고식을 치뤘고
이 골은 레알 마드리드 홈구장
5,000번째 득점.
후반기에 합류하여
미칠정도의 좋은 활약은 아니더라도
시간대비 득점력도 좋은 편이라
완전영입 가능성도
존재했으나
아데바요르의 가족문제로
성사되지 못했다.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는
22경기 8골로
나쁘지 않은 편.
토트넘 임대, 그리고 완전 영입
11-12 시즌에는
맨시티에서는 자리가 없었기에
이번에는 토트넘으로 임대를 떠났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레스 베일과 함께 팀내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리며
자신의 폼을 제대로 끌어올리는 등
맹활약을 펼쳤고
한시즌을 주전으로 뛰면서
EPL 입단 후,
가장 좋은 스탯을 남겼다.
37경기 18골 1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득점은 물론이고
어시스트에도 눈을 뜨며
토트넘 구단과 팬들을 사로 잡았고
시즌 후, 주급문제로
이견 차이를 보이긴 했으나
해결이 됨에 따라
토트넘으로 완전 이적에 성공했다.
등번호는 무려 1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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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력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인데
골 결정력에서 아쉬움을 보이면서
평가가 안좋은 초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데포에게 주전에서 밀리는 편이고
중요한 건 나올 때에도
거친 플레이를 통해
퇴장까지 당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하필 그 경기가 아스날전.
보아스 감독 체제에서
눈밖에 나며 2군까지 떨어지는 등
힘든 시간들을 보내기는 했으나
감독 경질 후,
팀 셔우드 감독이 오면서
다시 1군 복귀와 함께
그 경기에서 멀티골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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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4-15 시즌이 시작되어도
아데바요르의 득점감각은 더욱 떨어졌고
이 시기에 더불어
해리 케인이라는 존재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아데바요르의 존재감은 점점 더
떨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데바요르는 팀내 주급이
굉장히 높은 편이라 토트넘 입장에서는
처치 곤란의 존재가
되어버렸고
결국 그와 상의 끝에
계약을 끝내는 것으로 가닥을 잡으며
그는 FA가 되었고
차후 행선지는
크리스탈 팰리스가 되었다.
그후엔 저니맨으로 전락
리그 중간에
계약해지가 됨에 따라
다른 리그로 이적을 불가능했고
영국 내에서는 이적이 가능한 상황에서
팀을 못찾다가
크리스탈 팰리스와 계약했다.
6개월 단기 계약으로
일단 스스로 폼이 떨어진 상황이라
보여줄 수 있는게 없었고
결국 시즌 후,
팀과 계약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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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 시즌을 앞두고
프랑스리그의 리옹과 협상이 가능했으나
결국 결렬 되었고
터키리그 이스탄불과 계약했다.
17골을 넣으며
기사회생을 한 듯 했으나
이듬해 리그 중반까지 3골을 넣는데 그치며
결국 계약기간 만료와 함께
다시 한 번 팀을 떠났다.
그후로 터키 리그, 그리스 리그 등
여러 팀을 거쳤으나
임팩트가 부족하고
일단 득점력이 떨어지게 되면서
현재에는 주목도가
전체적으로 많이 낮아진 편.
국가대표로써의 아데바요르
2006 독일월드컵
아프리카 예선에서 11골을 넣으며
조국의 첫 월드컵 진출을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
이때에 대한민국과 같은 조였는데
대회 시작 전,
토고 축구협회와 선수들이
보너스와 관련하여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서
폼이 좋았던 팀은
분위기 똥망 속에서
3전 전패를 당하며 월드컵 무대를
마감해야했다.
2010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앞두고 버스로 이동 중,
괴한의 습격으로 대표팀 3명이 사망하는 걸
눈 앞에서 보게 되면서
그 충격으로
아데바요르는 국대 은퇴를
선언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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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3년뒤에
국대 은퇴를 번복하며 복귀했고
아프리카 메이저 대회에서
팀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어느정도 성적을 내는데 기여했으며
2019년 끝으로
국대에서 다시 은퇴했다.
A매치 87경기 32골
엠마누엘 아데바요르에 대한 TMI
01. 피지컬 사기였던 만능형 공격수
192cm의 큰키에
제공권과 좋은 피지컬을 통해
수비수들에게 밀리지 않으며
연계 플레이도 좋아 수준급의 패싱 능력까지
보유한 선수였다.
폼이 좋을 때에는
좋은 득점 감각은 물론이고
팀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오히려 원더골을 잘넣고
쉬운 득점을
못넣는 경우가 많아
기본기가 아쉽다는 평은 따라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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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팀내 불화가 너무 많다
그가 가는 곳마다
항상 불화는 존재했고 심한 경우에는
난투극까지 벌어질 정도.
그만큼 불같은 성격이 있으며
실력이 좋아도
팀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던 그의 커리어의
이유를 말해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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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콩가루 집안의 피해자였다
아프리카, 흑인 선수들은
보통 빈부격차가 굉장히 심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스포츠 스타로 성공하게 된 경우,
적게는 10명에서
많게는 50명이 넘는 사람들을
부양해야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이 존재하고
이것으로 인해
파산에 이르는 선수들도 많다.
아데바요르 역시 본인 스스로 국가와 아프리카
자선단체를 만들고
본인의 가족을 열심히 부양하는 등
왜 그가 그렇게 많은 주급을
원했는 지 밝혀지며
그에 대한 오해가
어느정도 풀렸으나 후에는
결국 가족들이 그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함에 따라
가족을 쫒아내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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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형이 K리그 입단 테스트를 받은 적이 있다
중앙일보에서
2006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같은 조 토고의 에이스 아데바요르의
집안을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에도 그의 가족들은
굉장히 잘살고있는 느낌이었으며
그의 가족들은
벤츠를 몰고 있었다.
그 시절에도 아데바요르의
등을 처먹으며 정말 빌붙어 살고 있었고
친형도 축구선수였는데
전남 드래곤즈의
입단 테스트를 받은 적이 있는데
기량미달로 탈락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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