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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득점력을 가진 공격수

콜롬비아 국적

스트라이커 포지션의 공격수로

한때 메시와 호날두

비교 할 정도로

탁월한 득점력을 보여주면서

유럽리그를 지배했던 공격수였다.

 

십자인대 부상으로

전성기 때 보여주었던 폼을 잃으며

EPL에서 추락하는 듯 했으나

AS모나코에서

다시 반등한 모습을 보였으며

위에서도 서술했지만

그가 폼이 좋았을 때에는

신계를 논할 정도로

탁월한 득점력을 보여주었던 선수였다.

 

 

 

 

빅클럽 진출 하기 전까지

헐크와 포르투를 이끌었던 시절

리버 플레이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며 좋은 득점 감각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유럽리그 팀들에게

오퍼가 오는 편은 아니라서

꽤나 오랫동안 이곳에서 뛴 편이었다.

 

87경기 39골을 기록했고

이 시기에 무릎부상을 두번이나

크게 당했으나

이겨내고 꾸준히 활약하며

결국 이적에 성공했고

그가 가는 곳은 FC 포르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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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첫시즌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발휘하며

리그에서만 28경기 25골

넣어버리는 등

총합 34골을 터트리며

유럽 리그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10-11 시즌에는

보아스 감독 아래에서

헐크와 투톱 형태를 이루며 뛰었고

리그, 유로파리그를

가리지 않고

좋은 득점력을 보여주면서

승승장구했고 특히 유로파 리그에서

대활약을 펼치며

결국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리그에선 헐크에 비해

득점력이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면

유로파리그에서는

무려 17골을 넣으며 득점왕과 함께

독보적인 활약을 보였는데

결승전에서도 득점을 기록하며

유로파의 주인공이 되었다.

 

포르투를 우승시킨 후,

보아스 감독이 첼시 감독으로 떠나면서

팔카오 역시

첼시 이적설이 나돌았으나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고

예상외로 그가 가게된 곳은 ATM.

 

 

 

신계를 넘보다, ATM 시절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다

무려 4000만 유로의 이적료를

팔카오 영입을 위해 쏟아부은 ATM은

아게로를 맨시티로 보내며

이적료를 충당했기에

가능했던 시나리오였다.

 

초반에는 부진을 면치 못하며

먹튀론이 떠올랐으나

뒤늦게 득점 페이스를 끌어올리더니

연일 득점포 폭발을 하며

득점 3위까지

치고 올라가게 되었다.

여기서 참고로 1,2위는 메시와 호날두

나누어 가지고 있는 상황.

 

유로파리그에서도

12골을 넣으며 2년 연속 득점왕과 함께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유로파의 남자란 

칭호가 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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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에도

첫 공식경기였던 슈퍼컵에서

자신이 가고 싶었던

첼시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달성해버리며

팀의 4:1 승리를 이끌었다.

 

리그에선

1경기 5골을 기록하는 등

점점 더 좋아지는 득점감각은 그의 포텐이

점점 더 터짐을

보여주는 스탯이었고

이 시즌에는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팀동료 디에고 코스타의 득점을 도우며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우승하는데 제대로 기여했다.

 

이시즌에도 34골을 넣으며

그가 왜 신계를 넘볼수 있는 선수인 지

기록으로 증명했고

그의 가치는 점점 더 높아져

더욱더 높은 곳을 향해

폭풍 선수 영입을 가져가고 있던

AS모나코의 오퍼를 받아

그곳으로 이적했다.

 

 

 

 

AS모나코 이적, 불운의 부상

이적료가 무려 6000만 유로

무려 6000만유로

거금을 쏟아부어 팔카오를 손에 넣은

AS모나코는

그에게 득점력을 기대했으나

생각보다 부진하다.

 

더불어, 그는

월드컵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며

월드컵 진출

결국 무산되게 되었고

클럽에서도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PSG에서 

놀라운 득점력을 보이는

즐라탄과 비교하여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팔카오는 대차게 까였고

본인 스스로

원하는 이적이 아니여서 그런지

유독 부진한 시기였다.

 

 

 

 

EPL 임대 시절은 엄연히 실패

맨유와 첼시에서 임대로 뛰었다

갑작스럽게

팔카오의 행선지가 맨유가 되었다.

물론 완전영입은 아니고

임대 형태였고

그럼에도 임대료가 무려 60만 파운드.

완전이적조항도 걸려있어

그의 활약여부에 따라

차후 행선지가 결정될 듯 하다.

 

네임벨류만 보면

공격수가 필요했던 맨유에게는

더할나위없는 영입이었으나

일단 팔카오는 무릎부상을 당한 후에는

신계를 커녕

너무 평범한 선수가 되었다.

 

결국 맨유소속으로

너무나도 부진한 시즌을 치르며

완전이적은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더불어 임대료를 떠나

그에게 높은 주급을 쥐어주었던

맨유 구단으로써는

실패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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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에는

놀랍게도 이번에는 첼시로 임대.

맨유에서 부진했기 때문에

그에게 기대를 거는

첼시 구단에게 의문을 가졌는데

역시나 너무나도 부진하다.

 

11월 이후에는

부상으로 팀 전력에서 제외되었고

첼시 구단은 후회했는지

겨울이적시장을 통해

그를 다른 팀으로 보내려 노력 했으나

그를 원하는 구단은 없고

원 소속팀인

AS모나코에서도 거부.

 

결국 제대로 보여준 것 없이

첼시의 역대 공격수 중 먹튀로 꼽히는

셰브첸코, 토레스 등을

소환하면서

그는 시즌 후,

AS모나코로 돌아갔다.

 

 

 

 

AS모나코 복귀, 나름대로 부활

플레이 스타일을 바꾼 것이 주요했다

AS모나코 입장에선

팔카오가 EPL로 임대를 떠나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 그를 높은 매물로 올려

이적료를 챙기려 했으나

그가 부진하자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팔카오가 AS모나코 소속에서 부활하며

자신이 좋았을 때의

득점력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

더불어 리그는 물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자

구단과 팬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무릎 부상으로

더이상 예전의 모습을 보일 수 없는

그가 플레이스타일을 바꿔

2선 자원들에게

공격을 지원해주고

연계플레이에 더욱 집중하며

득점에도 가담하는 역할을 주요하며

부활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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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도 그를 신뢰하며

주장직을 맡기고 구단에게도 그를

믿어달라고 말하는 등

팔카오는 스스로의 노력과

구단의 믿음을 통해

16-17 시즌,

모든 공식경기를 포함하여 30골을 넣으며

말그대로 기사회생했다.

 

18-19 시즌은

그가 AS모나코 소속으로 뛰는

마지막 시즌이 되었는데

여러가지 상황상 

팀성적은 굉장히 않좋은 시즌이었음에도

33경기 15골을 넣는 등

밥값을 해냈다.

 

AS모나코 소속으로

139경기 83골 1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스탯상으로는 훌륭했고

여러가지 아쉬운 시기들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유종의 미를 남기며 새로운 곳 터키로

떠나게 되었다.

 

 

 

 

새로운 도전, 터키 갈라타사라이

이적료는 500만 유로

2019년 9월,

터키로 날아가 새로운 도전

나서게 되었으며

그해 22경기 11골을 넣으며

전성기에 비하면 위력은 떨어지긴 했으나

득점 페이스는 괜찮았다.

 

20-21 시즌에는

근육파열 부상으로 오랜기간동안

팀에서 이탈하기는 했으나

17경기 9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어느정도 제 몫을 해냈다.

 

그리고 21-22 시즌을 앞두고

구단은 팔카오의 주급이 부담스럽다는 이유

그를 FA로 풀어줄 마음이 있으며

딴팀을 알아보라고

권유를 했는데

35살의 나이의 베테랑이기에

큰 오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며

그가 어느 팀으로 갈지

아직은 미정.

 

 

 

 

국가대표로써의 라다멜 팔카오

역대 콜롬비아 국대 A매치 최다골 주인공

2005년 남미 청소년 대회에서

팀을 이끌며

우승을 시키면서

기대주로 평가를 받았으며

2007년 A대표로 처음 선발 되었다.

 

2011년

코파 아메리카 대회에 참가하며

첫 메이저 대회

누비면서 콜롬비아의 8강

이끌었으나

결과적으론 아쉬운 모습.

 

폼이 가장 좋았던

2014 브라질월드컵을 앞둔 시점에서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너무나도 큰 부상으로

결국 월드컵 출전은 좌절되었고

이때에 콜롬비아 대통령이

직접 병문안을 올 만큼

국대에서 팔카오가 가지고 있던

존재감은 매우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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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코파 아메리카 출전 후,

국대에서 조금 멀어졌던 시기도 존재했으나

2018 러시아월드컵

지역예선을 앞두고

388일, 약 1년만에 다시 복귀하여

그라운드를 누볐다.

 

결국 주장완장을 차고

2018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했으며

이것은 본인의

첫 월드컵 무대였는데

득점을 기록하는 등 활약했으나

성적은 고만고만했다.

 

현재까지 콜롬비아 국대로

활약하고 있으며

이미 콜롬비아 국대 역대 최다득점자 기록

갈아치우며 그가 넣는 골은

곧 콜롬비아 국대의

역사가 된다.

 

A매치 91경기 35골

(2021년 8월 3일 기준)

 

 

 

 

라다멜 팔카오에 대한 TMI

 

 

01. 득점력이 탁월한 만능의 공격수

 

신장이 큰 편은 아니지만

헤딩 능력이 뛰어나 머리로 득점도 많이 올리고

양방을 모두 잘쓰는 스타일이라

수비하기도 어려워

정말 다양한 형태에서 

득점을 올릴 수 있는 선수이다.

위치선정도 좋고 수비 가담도 좋은 선수라

감독, 팬, 동료들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유형으로

강심장으로 큰 경기에서

더욱더 좋은 경기력과 득점력을 보인다는게

그가 신계로 갈수도 있음을

평가받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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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아쉬운 스피드와 부분적 유리몸 기질

 

보통의 유리몸을 가진

선수들과 비교하기엔 내구성도 뛰어난 편이지만

결국 어릴 때에도 좋지 않았던

무릎이 말썽을 일으켜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까지 당하는 등

무릎 부상을 여러 번 당하며

부분적 유리몸을

가지고 있는게 단점이다.

더불어 스피드가 뛰어난 편은 아니라

속공 상황에서 한계가 있으며

그럼에도 스피드의 아쉬움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다양한 장점을 통해

팀에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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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아버지는 베네수엘라 출신 축구선수

 

아버지도 축구선수였는데

베네수엘라 출신이라 나라 특성상

축구보다 야구가 인기 스포츠라는 점에서

팔카오의 꿈을 위해

콜롬비아로 옮겼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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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팔카오 미모의 아내

아르헨티나 출신의 가수로

축구선수들의 여자친구, 부인의 미모는

대체적으로 아름다운데

그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미모를 지녔다고 평가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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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야구팬이다

아버지 국가의 영향과

콜롬비아 역시 축구 다음으로 인기있는

스포츠가 야구라

팔카오 역시

야구팬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가 야구를 하는 모습이 유튜브에도

여러 편 나와있는데

실력은 그닥인 듯 하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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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대통령도 병문안 오는 클라쓰

십자인대 파열로 인해

월드컵 꿈이 좌절된 팔카오가 입원하던 도중

무려 콜롬비아 대통령 부부가

그를 병문안왔다.

그만큼 팔카오는 콜롬비아 축구 국대에서

비중있고 존재감있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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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한때 신계를 노렸던 선수

ATM 시절에는

라리가 특성상 메시와 호날두와 함께

득점왕 경쟁을 하기 때문에

비교가 되기도 했으나

그가 보여주던 퍼포먼스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신계로 평가되는

메시-호날두와 함께

신계가 될 수 있는 선수로

평가되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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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팔카오 통산 우승 횟수

 

<리버 플레이트>

프리메라 디비시온 1회

 

<FC 포르투>

프리메이라 리가 1회

타사 드 포르투갈 2회

수페르타사 칸디드 두 올리베이라 2회

유로파리그 1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코파 델 레이 1회

유로파 리그 1회

UEFA 슈퍼컵 1회

 

<AS모나코>

리그 1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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