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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

대한민국 국적

미드필더 포지션을 가진 축구선수로

FC서울로 프로 데뷔 후,

유럽파로 오랫동안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국대에서 박지성을 이은 캡틴을 맡는 등

중추적인 역할과 함께

2010년대 국대의 중심에는

기성용이 있었다.

 

유럽에서 돌아와

현재에는 FC서울 소속으로

K리그 무대에서 뛰고있는 중이며

클래스를 보여주는 중.

 

다른 어떠한 선수들보다

가장 이슈와 논란, 사건/사고가 많은 선수로

오해의 부분도 많지만

그만큼 기성용 스스로도

철이 들기 전에는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선수이다.

 

이미 전성기가 지났지만

아직 현역에서 뛰고 있는 중이며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으로도

이미 그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살아있는 전설이다.

 

 

 

 

10대의 반란, FC서울 데뷔

쌍용의 출격, 거대한 서막을 알렸다

자신의 고향 지역인

전라도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호주로 건너가

4년이 넘는 기간동안 축구유학을 통해

성장세를 가져갔다.

 

2006년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FC서울의 지명을 받아

프로 선수가 되었고

이청용과 함께

귀네슈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1군의 중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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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대의 나이지만

플레이 자체가 굉장히 노련한 편이라

그는 청대를 시작하고

올림픽 대표와 국가대표까지

발탁되는 등

엄청난 활약을 보인다.

 

그리고 2008년 K리그 무대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며

리그 베스트11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데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최연소 기록자

남아 있으며

19세에 세운 기록으로

종전의 기록은 20살의 이름을 올린

삼성 고종수였다.

 

그리고 2009년 시즌을 시작하며

스코틀랜드 셀틱에게

러브콜을 받았고

구단에서는 이청용이 볼튼으로 떠나면서

기성용까지 보내주게되면

타격이 크기에

1년 후,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기성용은 팀에 남아

1년을 뛴 후,

셀틱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유럽의 첫 시작은 셀틱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았던 셀틱 시절

데뷔전에서

환상적인 폼과 경기력을 보여주며

MOM에 선정되는 등

출발이 좋았다.

 

다만, 자신을 선택했던

사령탑이 경질되며 팀을 떠나게 되고

본인 스스로도

아쉬운 모습들이 나오며

주전 경쟁에서 실패하게 되었고

경기 감각이 떨어지며

국대에서도 부진한 편이었고

국내 팬들은

유럽 리그 중에서도

K리그와 수준이 많이 다르지도않는

리그에 굳이 가서

경기도 못 뛰는 지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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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년차가 되고

기성용은 반등의 기회를 마련했다.

일단, 데뷔골이 터졌고

동포지션의 주전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게 되며

기회를 잡았는데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우선 패스가 좋고

리그에 적응한 것이 신의 한수가 되어

나올 때마다

MOM급의 활약을 통해

셀틱 팬들에게도 인정 받았고

주전으로 올라섰다.

 

팀 동료로

차두리가 합류하게 되면서

기성용은 심리적인 안정을 찾게 되었고

본인 스스로

공격 포인트를 올리면서

확실히 자신감이 살아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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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차인 11-12 시즌에는

PK 전담 키커를 맡는 등 구단에서도

그를 밀어주었고

그가 보여주는

쏠쏠한 중거리포

득점도 득점이지만 속이 뻥뚫리며

팬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하이라이트 필름

많이 만들어냈다.

 

결과적으로 모든 공식경기에

42경기 7골 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중앙 미드필더로는

준수한 스탯과 함께

시즌을 마감했고

작년 시즌, FA컵 우승에 이어서

리그 우승의 중심이 되며

개인 커리어에

우승을 추가했다.

 

 

 

 

EPL 진출, 스완지 시티 입단

쏠쏠한 활약.. 하지만 감독과 불화

타이밍이 나쁘지 않았다.

셀틱을 떠나 여러 유럽 팀들의 관심

받고있던 기성용은

그 시기에

2012 런던올림픽에서

주장으로 환상적인 활약을 보여주며

동메달 획득과 함께

군면제도 받고

더불어 주가가 올라갔다.

 

계약기간 3년.

6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EPL 스완지 시티 입단이

확정되는 순간.

 

그리고 첫 시즌,

꽤나 고액의 이적료를 기록한 선수답게

중용되며 선발로 뛰는데

패스 성공률이나

전체적인 경기력은 나쁘지 않은데

팀 컬러와 기성용 본인의

스타일이 맞지않는

모습을 보이고

포지션에도 애매한 부분이 존재했다.

첫 시즌, 38경기에 출전하며

많은 경기에 뛰었으나

득점은 없었고

어시스트 3개만 기록하면

시즌을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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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차 시즌,

첫 시즌에 애매한 부분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쏠쏠한 활약을 했기에

주전 경쟁에서

밀릴 생각은 안했으나

정작 시즌 초에 벤치에 있다.

 

문제는 경기력을 떠나

라우드럽 감독과 불화로 인해

마찰을 겪으면서

그의 구상에서

완전 배제가 되었다는 것.

 

결국 라우드럽 본인이

기성용과 불화를 인정하게 되면서

기성용은 살길을

찾아야했고

결국 선덜랜드 임대를 통해

새로운 길을 마련한다.

그리고

결과론적이지만 기성용이 떠난 후,

라우드럽 감독의 스완지는

강등권까지 밀리며

결국 감독이 경질되었고

임대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은 기성용은

스완지로 복귀하여

더욱더 주축이 된다.

 

 

 

 

터닝 포인트가 되어준 선덜랜드 임대

첼시 전, 극적인 결승골의 주인공

선덜랜드 임대 이적 후,

첫 경기가 아스날과의 리그 경기였는데

선발출전 했으나

기대만큼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일시적인 돈까지 써가며

기성용을 데려온

선덜랜드 구단 입장에선

그를 꾸준히 기용했고

기성용 역시

스완지에서의 아쉬운 모습을

뒤엎을 활약이 필요했기에

악바리로 뛰었다.

 

그리고, 스완지 시절에 비해

훨씬 더 많은 활동량

두배에 가까운

태클 횟수를 기록하는 등

근성있는 모습으로

조금씩 선덜랜드 주전으로써의 

나아가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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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와의 컵대회 8강전에서

후반 막판 극적인 득점을 기록하며

팀에게 승리를 안기고

유니폼까지

벗어버리고 기뻐하는

하이라이트 필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에버튼과의 리그 경기에서

상대 골키퍼의 퇴장을 유도하는 반칙을

만들어 PK를 얻어냈고

직접 성공시켜

선덜랜드 리그 데뷔골과 함께

팀의 승리를 안겼다.

 

포옛감독의 신임을 얻어

기성용은 닥주전이 되어 뛰기 시작했고

폼이 오르고

일단 EPL 무대에

완벽 적응하게 되면서

조금 더 적극적인 플레이와 함께

전진패스를 포함하여

높은 패스 성공률을 통해

기사회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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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의 활약속에

주가는 다시 높아짐에 따라 스완지에서는

그의 빠른 복귀를

원하는 상황까지 놓였으나

아직 감독으로 남아있는

라우드럽 감독이 거절하게 되면서

선덜랜드에 일단

해당 시즌까지 남게 되었다.

 

선덜랜드 구단에서는

기성용의 완전 이적까지 바라는 상황.

선수 본인도

오히려 폼을 찾은 이 곳에서

뛰는 걸 선호하는 듯

보이기도 했으나

그 상황에 자신과 마찰을 일으켰던

라우드럽 감독이 경질되며

새로운 국면을 맞았고

새로운 감독인

게리 뭉크 감독이 기성용을 원한다

발언을 하게 되면서

일단 기성용은

스완지로 돌아가게 되었다.

 

 

 

 

스완지의 핵심 미드필더가 되다

EPL에서 기성용 폼이 가장 좋았던 시기

14-15 시즌,

리그 개막전에서 맨유를 상대

결승골을 넣어버렸다.

이 골은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는 골이였다.

 

EPL 개막골

스완지 구단 역사상 최초 맨유전 승리

맨유 42년만 리그 홈 개막전 패배

루이스 반할 데뷔전

 

이 모든 것이

기성용의 발끝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해당 시즌은 기성용이 가장

물이 오른 시즌으로

리그에서 8골을 기록하는 등

주전 미드필더로

완벽하게 부활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같이 중앙에 서는

존조 셸비와의 호흡

굉장히 좋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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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 시즌까지

스완지 유니폼을 입고 뛰었으며

종종 부상을 입는 등

어려운 시기들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부동의 주전으로 뛰면서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간간히 나오는

아스날, 유벤투스, AC밀란과의

이적설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그가 얼마나

빅클럽들에게

관심을 받는 지 보여주는 부분.

 

결국, 마무리는 아쉬웠다.

기성용이 스완지와 계약이 끝나며

팀은 강등 되었고

기성용은 재계약없이

FA가 되면서

새로운 팀과 곧 계약을 발표한다.

 

 

 

 

간지나는 유니폼, 뉴캐슬과 계약

가장 네임벨류가 높은 팀으로의 이적

기성용이 이적할 팀은

잉글랜드 명문 뉴캐슬 유나이티드.

현재 위상은

많이 떨어진 상태이지만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무엇보다 감독

무려 명장 베니테즈이다.

 

스완지에서

함께 뛰었던 셸비도 소속되어있고

중원의 나름대로

기성용이

경쟁력을 보일 수 있는 스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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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론적으로

뉴캐슬에서 기성용은 아쉬운 시간들

지속된 편이고

자신을 데려온

베니테즈 감독이 물러나면서

출전시간은 점점 더

줄어들게 되었다.

 

첫 시즌,

한때 주전으로 올라서며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등

활약했으나

일단 어느정도 노쇠화

찾아오기도 했고

클럽/국대를 병행하며 쌓여왔던

부상들이 나오면서

팀을 이탈한

시간들도 꽤나 되었다.

 

결국 뉴캐슬에서 두 시즌간 뛰면서

시즌이 끝난 후,

팀과 이별을 선택했고

여러가지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그의 차후 행선지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 중.

 

 

 

 

국내복귀 실패, 마요르카 입단

하지만 터져버린 코로나 사태

이제 때가 되어서

기성용은 K리그 복귀를 생각했고

전북 현대는

빠르게 접촉하여

K리그 최고 대우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며

협상을 이어갔으나

그의 친정팀 FC서울이 등장했다.

 

이상한 계약관계

기성용은 FC서울로 복귀를 하거나

타구단으로 이적하게 될 경우

구단에서 위약금을 물어줘야하는

상황이 되어

전북 현대는 발을 뺀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전북

기성용의 가치와 위용을 생각해

최소 연봉 15억을 부른 것과 달리

FC서울은 연봉으로

8억원을 부른 것.

그보다도 협상 과정에서

 

" 기성용도 예전 기성용이나 위대하지? "

 

자존심을 긁는 발언으로

기성용의 심기를 건들이게 되면서

결국 협상이 무산되고

기성용은 상처를 입으며

국내 복귀가 무산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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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10번을 받으며

라리가 마요르카 입단이 확정되었다.

6개월 단기 계약으로

소속팀을 찾아야하는 

기성용에겐 어떻게 보면

최상의 선택.

 

일본의 유망주

쿠보와 교체로 들어가게 되면서

데뷔전을 치루게 되었고

나쁘지 않은 활약으로

팀의 보탬이

될 것으로 예상이 되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리그가 중단됨에 따라

기성용에게도 부득이하게

휴식시간이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리그가 재개되었으나

기성용은 계속해서

경기에 나오지 않게 되면서

무슨일인가 했는데

부상 회복이 늦어지면서

경기에 뛰기엔

애매한 상황이라는 것.

그렇게 시즌이 끝나게 되면서

기성용은 재계약을

하지않기로 하면서

다시 한 번 팀을 찾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FC서울 복귀

쌍용이 K리그에서 다시 재회했다(각기 다른 팀으로)

2020년 7월.

기성용이 결국 FC서울로 복귀했다.

11년만에 복귀이며

돌아오는 과정에

상처를 입으며 감정싸움을 하긴 했으나

결국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연봉은 7~8억정도.

계약기간은 3년 6개월로 알려졌으며

등번호는 8번.

 

그리고 현재까지

FC서울 소속으로 뛰고 있으며

폼 자체는 전성기에 비해 떨어졌으나

클래스를 통해

역시 기성용은 기성용이다 라는 걸

여김없이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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