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마카이 과소평가받는 네덜란드 최고 스트라이커
네덜란드 국적
스트라이커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축구선수로
현재는 감독으로 활동중이다.
스페인 데포르티보와
독일 바이에른 뮌헨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엄청난 득점력으로
좋은 스탯을 가지고 있으나
전체적인 평가는
애매하고 과소평가 받는 느낌이 짙다.
데포르티보 우승의 최대 주역
1993년 자국 네덜란드에서
프로무대에 데뷔했고
꾸준한 활약을 통해 주전으로 도약한 후
팀의 에이스가 되었다.
96-97 시즌
34경기 19골의 스탯을 남기며
팀을 5위로 이끌며
UEFA컵 진출권을 따내는 데 이바지했고
시즌 직후,
여러 팀들에게
러브콜을 받으며 고민하다가
스페인 CD 테네리페와
계약을 맺었다.
첫 시즌은 7골로
조금 아쉬웠지만 적응기간으로 생각되었고
그 후, 98-99 시즌에
14골을 넣으며
팀내 최고득점자가 되었으나
19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결국 팀은 2부리그로 강등되어버렸고
구단 자체가 재정난이 오며
팀의 주축선수인
마카이를 이적시킬 수 밖에없는
상황이 오게 되면서
그는 팀을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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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포르티보 입단 첫시즌부터
마카이는 날아다녔는데
데뷔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심상치 않은
출발을 보이더니
그 해에
36경기 22골이라는
환상적인 스탯을 기록하면서
팀은 리그우승과 함께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도
16강에 진출한다.
00-01 시즌에도
리그에서 16골을 넣으며
19골을 넣은 트리스탄과 함께
팀을 이끌었고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과 함께
리그에서도 2위를 차지.
이듬해에는
득점력이 조금 더 떨어지긴 했으나
중요한 순간, 득점을 해주며
다시 한 번 리그 2위와
코파 델 레이
우승의 주역이 되면서
데포르티보의
에이스로 완벽히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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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데포르티보는
강팀이었고 트리스탄과 함께
짝을 이룬
마카이는 독보적인 공격력을 보여주면서
좋은 활약을 보였는데
특히 챔스와 같은
큰 무대에서의 활약이 좋았고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활약이 좋았던 덕분인 지
뮌헨 구단은
그에게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면서
역시나 그를 영입하려고 했던
맨유, 첼시를 밀어내고
마카이는 독일로 향하게 되었다.
뮌헨 클럽 레코드를 깨다, 챔스는 암울
뮌헨은 마카이를 영입하며
"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안겨줄 수 있는 선수 "
라는 코멘트를 달만큼
그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걸 보여줬다.
1,875만 유로의
이적료를 지불하면서
당시 기준으로
뮌헨 구단의 클럽 레코드를 깨는
크디 큰 금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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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시즌에
32경기 23골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 2위와
챔피언스리그에서도 6골을 기록하며
3위의 개인 성적을 남겼다.
이듬해에도
36경기 22골을 넣으며
바이에른 뮌헨의 리그우승을 이끌고
포칼컵 결승에서도
결승골로
팀의 우승컵을 안겼다.
05-06 시즌,
31경기 17골을 넣으며
역시 좋은 스탯을 기록하였으며
리그 우승에 이바지.
더불어 챔스 16강 2차전 경기에서
정확히 10.12초만에
득점에 성공하며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가장 빠른시간에 득점한 선수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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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마카이는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4시즌을 뛰며
리그 129경기 28골과
챔피언스리그 32경기 17골이라는
준수한 스탯을 남겼지만
결과적으로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팀을 우승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평가와 함께
결정적으로 그가
저평가를 받는 이유가 되기도했다.
당시 뮌헨은
리그에서는 꾸준하게 우승했으나
챔스 무대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고
마카이, 발락이 이끄는 공격진도
한계를 보이며
전체적으로 아쉽다는
평가를 받던 시기였다.
마지막 팀은 페예노르트
반 브롱크호르스트와
페예노르트로 동시 입단을 하면서
자국으로 돌아갔다.
첫 시즌,
컵대회인 KNBV 베이커에서
5경기 7골을 넣으며 우승을 이끌었고
이듬해에도
31경기 16골을 넣으며
득점 2위와 함께
나름대로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09-10 시즌
24경기 7골로 폼이 떨어진 모습을 보였고
결국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며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었다.
국가대표로써의 로이 마카이
21세 이하 대표로
31경기 15골을 넣는 대활약으로
A대표로도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1996년
1998 프랑스월드컵
예선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했고
데뷔골은 1997년
친선경기를 통해
기록할 수 있었는데
이 당시 축구를 즐겨본 팬들이라면
네덜란드 공격진은
막강하고도 너무 막강했다.
결국 꽤나 오랫동안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하고 있다가
2000년 다시
대표팀에 합류했고
유로2000에 출전하게 되면서
팀의 4강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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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2004에서도
팀의 4강을 이끌며 준수한 활약을 보였는데
그 후, 대표팀 반 바스텐과 불화로
결국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하면서
조금은 아쉽게 A대표로써의
경력이 끝이났다.
그가 클럽에서 보여준
임팩트에 비하면 A대표로써의 활약은
스탯상 저조했는데
일단, 그가 A매치에 나온 건
대부분 교체였고
그만큼 네덜란드의 공격진은
두터웠기에
그가 낄 자리가 없었다.
베르캄프, 클루이베르트, 반 니스텔루이 등
네임벨류가 뛰어난
선수들에 밀려
3~4옵션을 국대에서
담당했던 그였기 때문이다.
A매치 43경기 6골
로이 마카이에 대한 TMI
01. 데포르티보 우승을 최고로 꼽았다
축구 인생 최고의 순간을
데포르티보 리그 우승으로 꼽은 바 있으며
그 이유로는
뮌헨에서도 많이 우승했지만
그것은 많은 이들이
예측할 수 있는 일이자 선수들에게도
의무로 느껴졌다면
데포르티보에선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우승이였기 때문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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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최고의 동료로 발레론을 꼽았다
02-03 시즌
라리가 득점왕에 오른 마카이는
29골을 넣었는데
그 때에
자신에게 가장 많이 패스를 안겨주었던
선수가 바로 발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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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득점력 자체가 좋은 공격수였다
쉽게 말해
골을 잘넣는 선수였다.
188cm의 큰 신장을 바탕으로 헤딩력도 좋고
위치선정이 좋은 편이라
쉽게 골을 넣었는데
골 넣는 능력은
반 니스텔루이급이다 라는
말은 괜한 말은 아닌 듯 싶다.
다만, 활동량이 적고
공격수로써 수비가담이나 움직임 자체가
적은 편이라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